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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r 24. 2023

우리 딱 여기까지만 친해져요 (2)

-가까이하기엔 멀고 멀기엔 너무 가까운 아줌마들의 관계

  인간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꼭 지켜야 할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서로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끊임없이 이해하고 배려하며 가끔은 내가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가 오래 이어지기 힘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아이들의 성격이 제각각 다른 만큼 엄마들의 성격도 제각각 다르기에 이 만남에 큰 의미를 두고 더 오래, 더 자주 만나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있는 반면 조금은 느슨하게 서로의 간격을 지켜주며 관계를 이어가는 엄마들도 존재한다. 그럴수록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문제는 고작 아이의 나이가 같다는 공통점 하나로만 뭉쳐 있으니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의 모임 또한 이러한 문제로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일단 나는 사람을 무척 좋아하지만 나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난 뒤 고요한 집 안에 홀로 머물며 음악을 듣거나 집안일을 하는 등 집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은 나와 달리 아이를 등원시킨 뒤 함께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 등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에 큰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늘 모임을 가지길 원했고 누구 하나 빠지는 날에는 무척 서운해하였다.


그런 일이 반복이 되자 나는 점점 이 만남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였다. 사람들과 하루 종일 커피 마시고 밥 먹고 또 커피 마시다 아이를 하원시키면 벌써 진이 빠져 있었다. 뭐랄까. 우선순위는 나와 내 아이인데 계속 다른 것에 밀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이 모임의 만남이 조금씩 꺼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컨디션이 안 좋아서 혼자 쉬고 싶은 날에도 모임에 억지로 가야 할 때면 소위 현타가 오기도 하였다. 한 번은 나 빼고 모임을 가지면 안 되냐고 에둘러 거절했는데 그때의 어색한 분위기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분명 좋은 마음으로, 나를 위해서 오라고 하였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상대의 배려가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3~4명의 관계는 모임을 만들기에는 더없이 좋은 숫자이다. 그러나 한 명을 왕따 시키기에도 더없이 좋은 숫자이다. 사실 인간관계는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다. 특히나 우리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하나 없다 보니 이해관계가 얕을 수밖에 없다. 만약 나와 동갑내기였다면 좀 더 관계가 편하였을까?


아무튼, 나는 조금씩 엄마 친구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나의 시간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등원할 때 매일 가지는 커피 타임도 줄이기 위해 아이를 조금 일찍 등원을 시켰고, 뭐 하냐는 연락이 오면 아주 가끔은 보고도 못 본 척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씩 단톡방이 시들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카톡이 999개가 떠 있었는데 조금씩 숫자가 적어지더니 나중에는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할 때도 있었지만 내 카톡을 읽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조금씩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지만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던 나는 우연히 그 모임에서 나를 빼고 다른 사람을 모임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나로서는 잦은 만남이 너무 힘들다고, 나의 시간도 조금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거절을 하였을 뿐인데 나를 이렇게 왕따 시켜버리다니. 이건 너무 어른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나 무슨 기계 부속품을 갈아 끼우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빼버리고 다른 사람을 그 모임에 넣은 것도 무척 유치하다고 생각하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어른들의 유치한 왕따 놀이에 애꿎은 피해자는 바로 우리 아이였다. 내가 그렇게 외톨이가 되어 버리자 우리 아이 또한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이제 고작 만 3살인 아이는 갑자기 친구들이 자신과 놀지 않는 이유를, 엄마가 매일 가던 놀이터를 이제 더 이상 가지 않는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그렇다.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는 이렇게 얕고도 부서지기 쉬운 모래성과 같은 것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그 친구들 없이도 엄마만 있으면 그저 행복해하는 아이라서 별문제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 보였다. 아이는 그토록 바라던 엄마와 눈을 맞추고 엄마와 함께 뛰고 구르며 노니 이전보다 오히려 더 생기 있어 보였다. 훨씬 밝아 보이는 아이를 보니 내가 정작 중요한 아이와의 시간은 내팽개치고 쓸데없는 인간관계에만 치중했구나 싶어 후회감이 들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배신감도,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 싶은 억울함도 그렇게 조금씩 옅어졌다. 그렇게 나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엄마들의 관계는 자연스레 끝이 났다.



 

  물론 아이 친구 엄마들의 관계가 모두 이렇게 나쁘게 끝나는 것만은 아니다. 나 또한 아이 8개월 때 처음 문화센터에서 만난 엄마들끼리의 모임을 지금까지 이어나가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아이 친구 엄마들로 만났지만 지금은 가장 자주 연락하고, 내 가족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을 만큼 ‘진짜’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저 ‘같은 나이의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점 하나로 만나게 되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때로는 배려하면서 그렇게 4년의 추억을 쌓았다.



나이 서른을 훌쩍 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가 되어도 인간관계란 참 어렵다. 이런저런 일을 통해 한 가지 확실히 배운 것은 억지로 인연을 만들기 위해 너무 노력하지 말 것. 아무리 노력해도 내 인연이 아니면 모래처럼 흩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또 그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회에서 사람은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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