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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mihr Oct 10. 2023

그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1)

여느 날처럼, 읽고 쓰는 오전의 루틴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내 손가락은 어느새 구례의 어느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갈까 말까 고민하다, '에이 그냥 가지 말자고 결심'을 했었는데 말이다. 알 수 없는 내 변덕에 대해 잠시 몽상해보니, 아무래도 전날 밤에 꾼 꿈 탓인 것 같았다. 꿈속에서, 내가 지나가야 하는 길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정영철(가명) 선생님이다. 꿈속의 나는 그와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언니가 내게 말한다.


"저렇게 한 복판에 있는데, 그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길을 가야하는 나는 어떤 노인의 트럭을 얻어 다. 그런데 잠시 후 노인은 연료를 더 넣어야 한다면서 어떤 집 앞에 멈춰 내린다. 그리곤 한참을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노인을 찾으러 그 집 안으로 들어가 본다. 집 안은 미로처럼 복잡하다. 그곳에서 아주 좁은 골목을 겨우 빠져나오니, 아까 그 길 한 복판이고 내 바로 코 앞에 정영철(가명) 선생님이 서 있다. 꿈속의 나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그 노인이 나를 위해 일부러 여기에 들렀다는 걸 알아챈다.


*


홀로 지리산 아랫마을의 고요한 게스트하우스 초가 방에 앉아, 내 손가락을 마음대로 조종해 나를 그곳으로 이끈 것만 같은, 그 꿈에 등장한 정영철(가명)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중학교 시절에 나의 '아이돌'이었다. 물론 수수하고 평범했던 선생님의 외모는 아이돌 하고 한참 거리가 있었지만.


그분은 과학 과목 선생님이었는데, 어려운 내용에서 우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면 얼굴이 붉으락해지고 사방에 침을 튀기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셨다. 물론 그렇더라도 우리들이 과학책 속의 내용을 다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그 선생님의 마음만큼은 우리 모두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선생님은 (우리가 조르지 않아도) 자진해서 노래를 성심껏 불렀다. 우리가 잘 모르는 오래된 노래들이었, 그 노래에 대한 사연을 (묻지 않았는데도) 우리에게 실토하면서 얼굴이 또 다시 붉으락해지고, 그 노래 가사를 (수업 내용만큼이나) 정성 들여 한 글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칠판에 적어 내려가기까지 하면서. 나는 그 모습이 꼭 우리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아이들도 그랬는지 어땠는지, 선생님이 그러는 동안 우리는 (누가 조용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조용히 그 모습을 꼼꼼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아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을 다른 아이는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중학교 시절 내내 정영철(가명) 선생님이 싫다는 아이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나 역시 그 선생님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추종했다. 과학 공부를 저절로 열심히 고, 어떻게 하면 선생님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질문거리를 궁리했다.


*


하루는, 수업이 끝나 교실을 나서는 선생님을, 질문거리를 만들어 온 내가 쪼르르 따라갔다. 보잘 것 없는 사소한 내 질문에 붙들려준 선생님은, 성실한 설명 끝에 미소를 띠며 이런 말을 덧붙여 나를 정말 놀라게 했다.


"너 어제, 책상 새로 샀지? 아주 신났더라~"



(이어서 더 쓸지말지는 내일 다시 결정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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