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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mihr Oct 11. 2023

그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2)

나는 선생님의 그 물음 아닌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 전날 책상을 샀던 게 맞긴 했다. 그러나 그날 산 책상은 ‘새로’ 산 책상이 아니라, ‘처음으로’ 산 책상이었다. 게다가 그건 엄밀하게 말하면 ‘새’ 책상이 아니라, ‘헌’ 책상이었다.

   

어릴 적 집 근처에는 헌 가구를 아주 새것처럼 바꿔 주는 가구 집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영 못 쓰게 된 문갑 같은 것도 그 집에 가져다주면 아주 새것인 양 다시 태어났다. 선생님이 본 건 바로 그곳에서 구해 온 책상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방바닥에 엎드리거나 아니면 밥상을 펴 놓고 공부를 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표현대로 나는 정말 ‘신이’ 났었다. 나는 아마 생애 최초의 ‘내’ 책상을 배달해 주던 그 고가구 가게 아저씨의 리어카 옆에서 입을 귀에 걸고,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난생처음 맛보는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느라고 주변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아마도 맘껏 기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무방비한 나의 모습을 마침 퇴근길이던 선생님께 들켜버린 것이다. 그때 나는 그런 사실이 매우 부끄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좋았다.


*     


그 책상이 헌 책상이든 새 책상이든, 책상과 사랑에 빠진 나는 어떤 날에는 그 책상 앞에 앉아 밤을 새우기도 했다. 물론 과학 공부도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2학년 때는 과학 선생님이 바뀌는 바람에, 책상 앞에서의 더 많은 시간은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일기나 편지를 쓰면서 보냈다. 그러다 어느새 졸업반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내가 여전히 흠모하는 정영철 선생님이 졸업반 담임을 맡을 거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아 제발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운명은 가혹하게도 내게, 흥분하면 곧바로 뺨이 붉으락해지는 정영철 선생님 대신, 무섭기로 소문난, 눈매가 매우 날카롭고 언제나 짙은 화장으로 표정을 감추는 ‘가사’ 선생님을 배정해버렸다. 반 배정 후, 복도에서 정영철 선생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는데, 선생님이 먼저 내게 이런 말을 건네주셨다.     


“XX야, 너 담임 못 맡아줘서, 정말 미안해~”     


선생님의 그 말에 나오려던 내 눈물은 도록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게 왜 그 선생님이 미안하다고 사과할 일인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의 내 머리로는 선생님이 왜 내게 사과를 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은 마음이 허하지 않았고, 눈물이 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지금까지, 본인은 분명 잘못한 게 없지만 그래도 자기로 인해 마음이 상해버린 어린 사람에게 사과할 수 있는, 내가 본 최초이자 최후의 어른으로 남아있다.     


*     


독특하긴 하지만 만약 그일 뿐이었다면, 선생님이 35년이 지난 뒤에 내 꿈에까지 등장했을 리 없다. 다시 졸업반 내내 과학 시간마다 만났던 선생님은,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내게 제안 하나를 하셨다.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나는 도전조차 안 하겠다고 답했다. 선생님이 마지막에 덧붙인 이런 말이 내 결심의 결정타였다.


 “그런데 거기 가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해, 힘들 수도 있지만, 집을 떠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지.”     


드문드문 봤을 선생님 눈에도, 집을 떠나는 편이 내게 더 좋을 것이라 여겨진 것처럼, 당시 내 집 형편은 썩 좋지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집구석을 떠나기 두려웠던가. 집은, 그게 어떤 집이든 간에 나를 만들고 키워낸 곳이다. 그러니 집을 떠난다는 건, 생명을 준 댓가로 내게 부여한 의무를 저버리겠다는 뜻이다. 주어진 의무 대신 새로운 의무를 창조할 만큼의 힘이 그때 내겐 없었던 것이리라. 또 집은, 그게 어떤 집이건, 내게 가장 익숙해서 가장 안전한 듯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니 집을 떠나는 건, 익숙한 것에만 쉽게 반응하며 살던 삶을 떠나 새로운 감각의 날을 통째로 다시 벼리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집에 머물라고, 만약 가겠다면 더 좋은-편안한 ‘집’으로 가라 한다.


그러나 정영철 선생님은 ‘집을 떠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말해 준 유일한 어른이다. 그래서 35년이나 지난 뒤에도, 아니 이제는 그간 의무에도 충실했고 힘도 좀 생겼으니, 더 이상 피하지 말고 너 자신의 새로운 의무를 창조하라고, 내 꿈의 길 한복판에 서 계셨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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