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도 코로나에 걸렸다. 남들 다 걸려도, 심지어 가족이 걸렸을 때도 나는 안 걸리길래, 나는 코로나에는 안 걸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결국 뒤늦게 된통 걸렸다.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오기 전날 밤 꿈속에서, 머리를 감는데 '붙임 머리'를 해서 평소 내 머리보다 훨씬 길다. 그 긴 머리가 걸리적거려 한쪽 붙임머리는 떼어냈지만, 여전히 다른 쪽 붙임머리가 성가시다. 그러다가 깨어났는데, 오륙 년 전 독감에 걸렸을 때도 머리카락 꿈을 꿨던 생각이 났다. 그때도 꿈속에서 내 머리가 엄청 길어졌었다. 그때는 붙임머리는 아니고 황금빛으로 염색한 긴 머리였다. 붙임 머리는 둘째 딸 덕분에 올해 알게 된 '신 지식'이라, 아마도 그때는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방구석에 갇혀 곰곰 생각해 보니, 좀 신기하다. 평소에 건강하던 내가 독감이나 코로나 같은 중병에 걸리기 전에 꾸는 꿈은, 왜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꿈일까? 머리카락과 관련된 꿈에 대해 검색을 해 보니, 머리카락과 질병이 관련이 있다는 해몽이 있기도 하지만 내 꿈과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나의 잃어버린 개인적 기억일까? 그러자 문득, 열한 살 때쯤 '머리를 절대로 안 자르겠다'라고 말해서, 이모한테 머리통수를 아주 세게 맞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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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모와 엄마는, 일종의 분업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엄마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이모가 나를 포함한 동생의 아이들을 돌봐주면서 그로부터 생활비를 보탬 받았다. 성격이 유쾌했던 이모가 우리를 돌보며 화를 냈던 기억은 거의 없다. 말썽꾸러기 아들들만 있던 이모에게 동생의 딸들을 돌보는 일은 별 일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조카딸들의 머리를 길러 예쁘게 땋아주는 것까지는 할 수 없는 일이었던지라, 이모는 우리들의 머리를 늘 직접 '바가지 머리'로 잘라주곤 했다. 정말 바가지랑 똑같은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이모가 잘라 준 내 머리 위에 직접 집에서 쓰던 바가지를 써보기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재밌다고 웃어댔지만, 어린 나는 '바가지' 같은 그 머리가 결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열한 살의 어느 날,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피아노 레슨비가 정확히 얼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분업으로 살아가던 우리의 형편으로서는 매우 가당치 않은 요구였음엔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계속 졸라댔고, 결국 이모에게 생활비를 주러 온 엄마에게 피아노 렛슨비를 받아내고 말았다. 그런데 또 바로 그날, 하필이면 이모는 내 머리카락을 예의 또 그 '바가지' 머리로 잘라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또 그날 하필이면, 평소와 달리 한사코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이모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통에서 불을 '번쩍~!'하고 밝혔다. 그게 아픔이었나?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아픔보다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더 컸고, 그래서 아주 서럽게 울었다.
울면서 나는 머리를 안 자르겠다는 게 맞을 일인가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이모에게 주던 생활비가 피아노 학원 렛슨비만큼이 줄어든 것은, 이모로서는 꽤 화가 나는 일일 수 있겠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게다가 나는 그때 너무 내 욕망에만 빠져서, 이모가 왕년에 배구 선수였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강스파이크를 하던 실력으로 그가 내 머리통을 후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사전에 계산했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무방비상태로 당하고 말았고, 그래서 그 아픔은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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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강스파이크를 당한 덕분에, 이모의 '바가지 머리'로부터 벗어난 나는 그때부터 피아노 학원에도 다니는 여학생에 걸맞게 머리를 열심히 길렀다. 이모가 조카딸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지 못하던 것처럼, 내 엄마 역시 자신의 딸들의 머리를 매만져줄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사실 그때보다 더 어릴 적부터, 나는 긴 머리를 한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공상을 많이 했다. 동네 친구들 중에서 유독 긴 머리를 예쁘고 얌전히 빗어 내리거나, 솜씨 좋은 땋은 머리를 하고 다녔던 아이들이 내 공상 속 모델이 되곤 했다.
그리고 이제 바가지 머리를 벗어난 나는, 내 실제의 머리를 가지고 공상 속에서 보았던 대로 이런저런 실습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양갈래로 묶고, 또 다른 날은 아래로 내려 땋고, 또 어떤 날에는 또 엄마를 졸라서 파마머리까지 하고 학교에 가서 (학생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생님께 꾸중을 듣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가지고 스스로 지지고 볶았던 덕분인지, 지금은 긴 머리에 대한 회한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아픔이 찾아오기 전에 긴 머리카락에 대한 꿈을, 두 번이나 꾸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게다가 독한 약에 취한 이 몽롱한 상태는 강 스파이크로 후려쳐진 그때의 느낌과도 똑닮은 것이다.
지금 이모가 옆에 있다면, 당신이 날린 그때 그 강 스파이크 때문에 내가 이런 꿈을 꾸는 게 아니겠냐고 따져볼 텐데. 이모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또한 그 강 스파이크 때문에 나는, 없는 살림 속에서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오랫동안 조카딸들을 보살피며 '바가지 머리'까지 잘라주느라 애쓴 이모의 노고에 대해서는 아예 당연한 듯 모른 체하며 잊고 살았다. 그때 당신이, 얼마나 애쓰고 수고했을지 직접 내가 두 아이를 키워보니 이젠 알 것 같아서, 이제사 뒤늦게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그러니 당신도 그 때 내게 보냈던, 그 강렬한 스파이크의 기억을 이제 그만 거두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