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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May 08. 2024

그대 자신과 화해하라!

"억압은 불쾌한 결정을 면하려는 비도덕적 경향이다." 칼 G. 융


# 이 글은 솔 출판사의 융 기본저작집 제4권 <<인간의 상과 신의 상>> 중의 <심리학과 종교> 부분을 읽고, 필자의 사적 편견에 따라 주관적 해석으로 쓴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



종교에 대해 인간의 발명품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융은 종교를 인간 심혼의 무의식적 실재가 저절로 표현된 것으로 본다. 서로 떨어진 수많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수많은 시대에, 거의 비슷한 종교적 신화와 제의가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런 견해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종교란... 어떤 역동적 존재나 작용에 대한 주의 깊고 성실한 관찰이다. 그와 같은 역동적 존재나 작용은 인위적인 의지행동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 작용이 인간 주체를 사로잡고 지배하며, 인간 주체는 그것을 만든 자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희생자이다.... 누미노줌(Numinosum, 신적인 신성한 힘)은 눈에 보이는 객체의 성질이거나 의식의 특수한 변화를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것의 현존이 주는 영향이다."

 

그에 따르면 종교적 도그마들은 인류가 아직 정신을 목적 지향적 활동에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때 생겨났다. 원시적 인류는 의식적 자각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지각된 정신의 내적 기능을 종교적 제의로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예컨대 자기 안의 악이나 양심의 가책 혹은 그림자가 지각되었을 때, 그들은 인격화된 '악마'를 떠올렸다. 동시에 그것을 다스리거나 대결하는 강력한 마음의 힘에 대해서는 인격화된 신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자기 마음대로 없애버릴 수 없는 '악마'에 대해서, 온갖 종교적 제의를 만들어 신에게 기도와 제물을 바치면서, 의식에 대한 보호막과 통제력을 기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도그마와 상징들은 실상, 허구가 아니라 객체적인 '정신적 실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들이며, 근원을 알 수 없는 내적 경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그러나 과학과 합리성의 발달로 종교와 함께, 심혼의 보호수단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내적 경험 앞에서 온갖 신경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도그마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제의(祭儀)가 영향력 있는 권위를 잃어버리자, 인간은 도그마와 제의의 보호와 와 인도 없이 내적 경험 앞에 직접 마주 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현대인들도 꿈을 꾼다. 융은 특히 신경증 환자들의 꿈속에서, 종교적 도그마의 상징들을 자주 쉽게 포착했다. 꿈에 등장하는 사각이나 원형의 만다라는, 개체의 의식 상태을 위협하는 집단 무의식의 침투에 대한 보호벽을 만드는 기능이 있다. 그런 꿈을 꾼 후에는 환자의 상태가 매우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


현대병이라 할 수 있는, 신경증의 원인은 자신의 '내적 경험'에 대한 무의식적인 억압에 있다. 이런 억압은 의식적인 억제와는 다르다. 예컨대 도둑질과 같은 사회적으로 명백한 범죄는 의식적으로 억제된다. 그러나 억압은 명백한 범죄처럼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비(非) 사회적인 것들에 대해서 행해진다.


예컨대 산모가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안 한다고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좋은 엄마'라는 인습적 도덕 상에서의 명성은 하락한다. 오래전 나는, 아기에게 모유수유를 꽤 오랫동안 하면서, 병원에서 아무런 진단을 내릴 수 없는 이유 없는 기침을 오래도록 했었다. 그러던 중 모유수유를 중단하자 또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기침이 멎었는데, 그건 아마도 '좋은 엄마'라는 타이틀에 (무의식적으로) 너무 신경을 쓰다 걸려버린, 신경증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비겁하기 때문에 억압한다. 인습적 도덕, 명성 등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억압은 불쾌한 결정을 면하려는 상당히 비도덕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억제는 근심, 갈등, 그리고 고통을 일으키지만 그렇다고 신경증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신경증은 항상 정당한 고통의 대치물이다."

 

인습적 도덕에 신경을 쓰는 일에 대해 융은, '비도덕적 경향'이라는 좀 '요상한' 평가를 내린다. '좋은 엄마'가 되려는 게 왜 비도덕적인가? 내 안에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나도 있으나, 그 밖에도 무수한 또 다른 자기가 있다. 아이가 젖을 먹는 동안에는, 아이를 두고 한 개체로서 향유할 수 있는 독립적이며 다양한 활동을 하기 어렵다. 갓 태어난 아기에겐 모유가 좋고, 엄마에게도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 정서적으로 좋을 수 있지만, 그 역시 적당한 선에서 분리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하나의 명성에 (무의식적으로) 집착해 있으면, (나에게 아무런 명성도 안겨주지 못하는 다른) 나'들'에게는 생기를 얻을 기회를 주지 않는 폭력적인, 억압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비도덕적이자 비겁함이라는 말도 맞는 듯하다. 18개월 간의 모유 수유는, '좋은 엄마'외의 다른 나'들'에게는 너무 길어서, 그들은 내게 기침소리로 항거한 것이었을까? 융은, 그럴 땐 자신의 마음 상태에 집중하면서,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형제'를 '자기 자신'으로 바꿔서 해석해 보라고 조언한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성을 내는 자는 심판받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바보라 말하는 자는 법정에 넘겨질 질 것이다; 또한 어리석은 자라고 말하는 자는 불지옥에 빠져야 할 것이다. 이제 그대가 그대의 예물을 제단에 바치려 할 때 바로 거기서 무언가 그대 자신에게 거슬리는 마음이 생각나거든 그대의 예물을 바로 제단 앞에 놓아두고 가서 먼저 그대 자신과 화해하라; 그 뒤에 돌아와 예물을 바쳐라. 그대가 그대와 함께 가고 있는 동안에 그대 자신과 더불어 제때에 화해하라."

 


*


신경증 환자들의 꿈에 등장하는 만다라의 중심은 비어있다. 만다라는 온갖 종교 미술에서 나타날 만큼, 종교적 태도를 표현한 것이며, 비어있는 중심은 바로 인간 안에 변함없이 자리한 신격의 자리다. 비록 종교적 도그마가 힘을 잃어버렸을지라도, 인간 안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신의 자리는 언제나 남아있다.

 

부처의 자리에 부처는 보이지 않는다 ('스투파의 숲' 전시물 중)


융은, 무의식을 의식 이하라고 평가절하하기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신들 혹은 귀령이라고 가정하는 하는 편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여긴다. 우리는 무의식에 대해 결코 제대로 알지 못하며, 그 힘을 통제할 절대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신들. 어쩌다 내가 융에게 주워들은 이런 말을 흘리면, 주위 사람들은 나를 사이비교 신자로 여긴다. (ㅠㅠ) 그러나 이런 관점은 아주 오래된 우파니샤드 철학과 맥이 닿아있다.


"신격이 인간 밖에 있다는 선입견... 이는 전적으로 기독교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편견에 동의하지 않는 종교도 있다. 이런 종교에서는 (기독교 신비가들처럼) 신과 인간의 본질적인 동일성을 끈질기게 주장한다. 선험적 동일성의 형태로든, 어떤 수행이나 이니시에이션들로써 도달될 수 있는 목표의 형태로든 신과 인간이 동일하다는 것이다.(예-요가의 수행)"


그러나 집단 무의식이라는 신들이 인간 안에 있다고 하여, 그 신들과 나를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사람은 미치거나, 온갖 (도덕적) 이념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스스로에게 (때로는 타인들에게까지) 재앙을 가져온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그걸 (의식적인) 내가 생각해 냈다고 여기는데, 그런 게 가장 위험하다고 융은 강조한다. 내게 온 어떤 욕망이나 생각이 특히 내가 시간을 들여 연구하거나 고심하지 않았다면, 즉시 그 타자(他者)와 거리 두기에 들어가야 한다. 일개 개체인 우리가 비록 집단 무의식에 대항할 힘은 없지만,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 내게 유용한 것을 선별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시고자 하는 '주 하느님 der Herr'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로써 그의 보살핌이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것'의 지배에 대항해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신'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택된다."


 The Judgement of Paris, Peter Paul Rubens, 1638~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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