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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Moreau Jul 07. 2024

같은 원리, 다른 가능성

스피노자 <<에티카>> 느리게 읽기


사람들은, 아니 나는, 이분법에 길들어 있다. 예를 들어, 타인을 연민하고 동정하는 것은 좋다 여기고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건 나쁘다 여긴다. 사람들은, 아니 나는, 대체로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사물을 혹은 행위를 이분법으로 판단하면 간편하고 빠르다. 그래서 뼛속까지 일원론자인 스피노자의 다음과 같은 정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인간으로 하여금 연민을 품게 만드는 것과 똑같은 본성의 특성으로 인해, 인간은 질투하거나 또한 야심을 품게 된다." (3부 정리 32의 주석)


*


우선 연민에 대하여.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는 이유는 '그와 나는 유사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체적-물리적으로 따져 보아도, 인간끼리는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 감정은 신체변용의 지각이므로, 비슷한 신체를 지닌 것들은 유사한 상황에서는 실제로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외부 물체의 본성이 우리 신체의 본성과 유사하다면, 우리가 표상하는 외부 물체의 관념은 외부 물체의 변용에 유사한 우리 신체의  변용을 포함할 것이다. 따라서 만일 우리와 유사한 어떤 사람이, 어떤 감정으로 자극받아 변화되는 것을 우리가 표상한다면, 이러한 표상은 이 감정에 유사한 우리 신체의 변용을 표현할 것이다." (3부 정리 27)


누군가에게 공감-감정 모방-한다는 건, 정신의 상상을 통해 나의 신체가 그의 신체와 유사한 변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누군가를 질투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때도 그와 나는 여전히 '유사한 존재'인데, 연민을 느낄 때와는 다만 그와 나의 처지가 뒤바뀌었을 뿐이다. 연민의 대상은 (나와 유사하지만) 내가 가진 것을 못 가진 사람이고, 질투의 대상은 (나와 유사한데도) 내가 못 가진 것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은 또한, 타인으로부터 공감도 받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도 좋아하길 바라며, 내가 싫어하는 것을 타인도 싫어하길 바란다. 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그렇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내가 옳다'는 이기적 확신을 위해 타인의 인정을 원한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사랑을 북돋는 새로운 원인이 더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더욱 확고부동하게 사랑할 것이다." (3부 정리 31)


그런데 경험으로 이미 알다시피, 우리에게 기꺼이 공감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문데 (아, 참, 이역시 내 경우에게만 그럴 수도!) 그 역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바라므로, 모든 사람이 똑같이 서로 장애가 되며, 또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어 하거나 또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므로, 모든 사람이 서로 증오하게 된다." (3부 정리 31의 주석)


*  


스피노자에 따르면, 타인을 크게 연민하는 사람은 '원리상' 또한 타인을 크게 질투하게 되어있다. 연민과 질투는 일종의 슬픔이고, 슬픔이란 수동적-외부 원인에 의해 생겨난- 감정이다. 외적 사물의 결핍에 의해 타인이 고통을 느낀다고 상상하는 사람은, 자신에게는 결핍된 타인이 지닌 외적 사물의 풍요가 너무 잘 상상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행하게도, 인간의 신체구조는 (물리적으로) 매우 복잡해서 비슷한 상황에서도 각자 다른 걸 느낀다. 심지어 같은 사람도 때에 따라, 같은 사물에 대해 다른 걸 느끼지 않는가! 이러한 때에 사람들은 자기 확신의 기쁨보다는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능동적' 신체라면, 이런 혼란의 경험을 인식의 확장 기회로 활용할 것이다. 그는 연민이든 질투든, 감정을 느끼고 이분적으로 판단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그것의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게 될 것인데, 그것 역시 연민하고 질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 좋은 삶을 욕망하는, 인간 본성의 특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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