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이론은 필요 없다
그때 팔라완 앞바다에서 50대인 엄마에게 30대냐고 말을 건 다이빙 강사의 말은 그저 '접대용' 멘트가 아니라 어쩌면 진심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 물속에 있을 때의 엄마는 언제나, 땅 위에서 두 발로 걸을 때보다 훨씬 더 날쌔고 생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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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띠' 엄마는 '개헤엄'의 달인이었다. 어릴 적 여름에 바닷가나 풀장에서 튜브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다녔다. 그럴 때, 물 밖으로 내밀어진 엄마 얼굴에는 어린애처럼 장난기 어린 웃음이 가득했다. 좀 더 커서 수영을 배우면 나도 엄마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 배운 뒤에 간 팔라완의 그 아름다운 바다에서, 나는 '음~퐈~음~퐈' 하며 머리를 처박았다 내미는 노동을 반복했다. 유유자적 '개헤엄' 치며 노는 엄마 옆에서, 그간 배운 수영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말이다.
이론부터 수영을 배운 나와 달리 엄마는, 고향집 앞을 흐르던 '냇깔'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면서 수영을 터득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던 그 시절, '냇깔'은 여름이면 동네 아이들의 '핫플'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참외니 수박이니 들고 와 시원한 '냇깔'에 던지며 비치발리볼인양 가지고 놀다가 시원해지면 쪼개먹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마의 개헤엄 실력은 수준급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엄마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을 개헤엄의 '달인'으로 승격시킨 건 미군들의 공로였다. 어느 날 '냇깔' 너머에 미군 비행장이 들어섰는데, 심심했거나 혹은 동정심이 넘쳐났던 미군들은 건너편 제방에서 아이들을 향해 비스킷이며 초콜릿이 든 '전투식량' 꾸러미를 흔들어댔던 것이다. '냇깔'에서 놀던 아이들은 더 빨리 '전투식량' 앞으로 가기 위해 서로 경쟁하듯 헤엄쳐 '냇깔'을 건넜다.
한 번 '전투식량' 맛을 본 아이들은, 다음부턴 아예 집에서 세숫대야를 가져와 머리에 이고 강을 건넜다. 자기만 달랑 먹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맛 좀 보여주겠다는 효심 혹은 가족 사랑의 마음으로, 한 팔로는 머리 위 대야를 붙들고, 나머지 한 팔로만 헤엄을 치며 강을 건너는 아이들! 그 기이한 광경에 넋이 나간 미군들은 박수까지 치면서 아이들을 향해 더욱 힘차게 '전투식량'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내내 감탄 어린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던 미군과 마주해 아주 당당하게 이런 협상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 : (먹는 시늉을 하며) "헤이~! 찹찹"
미군 : (웃음을 띠고 전투식량을 건네며) "오케이, 찹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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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이야기를 듣다가, 그 '냇깔'의 정확한 지명을 찾아 구글 지도로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폭이 좁은 곳은 1백 미터, 넓은 곳은 1백80미터나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실제로 헤엄쳐야 할 길이는 그보다 훨씬 더 길었다. 흐르는 물살 때문에 헤엄치는 도중 계속 하류로 조금씩 떠내려가니까. 엄마와 아이들은 건너편 도착 지점보다 훨씬 더 상류에서 출발해, 대각선으로 강을 건너 정확히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나 삼각함수 같은 얘기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