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엄마가 원망스럽고 엄마한테 서운한 마음이 들 때에도, 나는 단번에 크게 웃을 수 있다. 엄마가 내게 선물했던, 내게는 '영원할' 하나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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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어느 여름, 나와 동생은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물론 그건, 동생과 나의 생애 최초의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우리는 필리핀 팔라완에 있다는 작은 섬 속의 아담한 리조트를 찾아냈다. 당시에 그곳은, 비행기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또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그런 다음에 작은 배로 갈아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런 멀고 먼, 그러나 그만큼 더 청정하고 눈부신 장소였다.
깊고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해 전 세계의 다이버들을 불러들인다는 그곳에서, 우리 셋도 생애 처음의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했다. 우리를 맡은 강사는 필리핀 원주민이었는데, 영어가 매우 유창했다. 다만 발음이 필리핀어인 따갈로그식이라, 아메리카나 잉글리쉬 영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와 동생을 바짝 긴장시켰다. 그런 우리가 너무 긴장되어 보였는지, 강사는 잡담 같은 말을 늘어놓다가 엄마를 향해 문득 짧은 의문문을 던졌다.
"쏘르띠?"
당황한 나와 동생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우리는 그의 따갈로그식 영어를 재빨리 아메리칸식으로 번역하고 그런 다음 다시 한국말로 엄마에게 통역해드리려 했다. 그런데! '쏘르띠'란 아마도 'Thirty'가 아닐까 우리가 머리를 굴리는 0.01초 사이, 엄마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아주 크고 호탕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노, 개띠!"
그 순간 그 둘 사이를 통역해야 할 나와 동생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너무 큰 소리로 웃어젖히고 말았다. 우리가 그렇게 너무 즐겁게 웃으니까 엄마는 (이유도 궁금해하지 않고!) 웃는 딸들을 따라 그냥 크게 웃었다. 그런 우리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면 다이빙 강사도,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우리를 따라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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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영어로 말하던 외국인이 갑자기 한국말로 '소띠'냐고 물어본다고 생각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노, 개띠'라니. 영어(NO)와 한국어(개띠)의 '요상한' 조합어가 대체 어떻게, 그렇게나 재빨리, 튀어나올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사고형' 인간에게 그 순간은, 아직 불가사의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