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릴 때부터 영특했다
자긍심 넘치는 철학자 니체는 본인 자서전에, 이런 말을 남겨 놓았다.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지만 만약 엄마가 자서전을 쓴다면, 니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에겐, 그래도 좋을만한 운명적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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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 무렵의 어느 추운 겨울밤, 엄마는 친할머니 집에서 엄마의 할머니와 함께 자고 있었다. 잠결에 무슨 소란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눈을 떠보니 할머니와 언니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밖에서는 남자 어른들의 목소리와 뭔가 우당탕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엄마는 크나큰 공포와 함께 숨어야 한다는 본능적 느낌에 따라, 재빨리 장롱 옆의 좁은 공간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런데 의외로 그곳은 장롱 뒤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이르러, 가만히 숨을 죽였다. 그때 귀고막이 터질 듯 요란한 '탕탕 타다당' 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났다. 놀란 엄마는 꼼짝도 못 하고 있다가 그곳에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고~ 우리 XX 죽었다, 아이고~ 아이고~, XX야~~ 아이고~~~"
할머니가 울부짖는 소리에 엄마는, 장롱과 벽 사이를 재빠르게 기어서 빠져나갔다. 그런 엄마를 발견한 할머니는 달려와 엄마를 오랫동안 꼭 끌어안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영특한 것, 어린것이 어찌 그리 영리할꼬!"
그날은 동네 사람들이 모두 피난을 떠나야만 했던 '1.4 후퇴'였다. 엄마의 할머니 말에 의하면, 전날 밤 집을 습격한 것은 인민군을 앞세운 '동네 깡패'들이라 했다. (엄마의 친가는 대대로 동네 지주였다.) 할머니는 재빨리 몸을 피하느라고, 너무 깊이 잠들어버린 어린 손녀딸을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목숨을 보전하고 돌아오니, 진짜 총을 들고 다니던 인민군과 '동네 깡패'들이 집 이곳저곳에 막무가내로 총을 쏘아댄 흔적만 남아있었다. 어린 손녀딸과 함께 자던 방 역시 문이 활짝 열린 채, 이부자리에 어지러운 총탄 자국만 난자했다.
그리하여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과 죄책감으로 혼절하기 일보직전에, 어린 엄마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 엄마의 할머니는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가 아무리 심한 말썽이나 떼를 부려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고 영특한 것, 어린것이 어찌 그리 영리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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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나로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반복되는 엄마의 지나친 자긍심이 이젠 제법 지루하다. 그러나 만약 이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라는 존재 또한 어린 엄마의 영리함이 발휘한 기적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이야기의 진위를 가려줄 이들은 모두 오래전에 사라졌고, 굳이 그 진위를 가려내는 일도 나로서는 매우 귀찮을 뿐이다.) 그러니 니체처럼 남다른 유머감각을 발휘해, 또 찾아올 지루함을 크게 웃어넘기련다.
'엇!!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