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최초의 철학
철학자이자 종교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는 책의 첫 페이지에서 “신화는 인간이 최초로 생각해 낸 최고(最古)의 철학”이라 단언한다. 신화는 그냥 재미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우주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는 의미다. 근대 이후의 사람들은 신화를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신화는 인류의 출현과 함께 생겨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므로 그 역사는 최소 3만 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그런 “신화를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의 기나긴 역사)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대부분의 신화는 서로 다른 인식 영역을 연결시키는 ‘유동적 지성' 활동의 산물이다. 상징적 사고는 이질적인 영역을 빠르게 횡단하고 연결하는 신경조직의 활동이 있어야만 가능한데, 이런 '유동적 지성'은 모순을 끌어안은 채 전체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직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신화가 지닌 이런 독특한 논리는 현재의 우리가 ‘논리적’이라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신화 속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자유자재로 바뀌고 각자의 기능이 역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역동적 비틀림, 반전 혹은 터무니없는 비약은 ‘감각의 논리’에서 비롯되며 이는 인간에게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제거된 엄청난 자유의 시공을 체험시킨다. 그렇다고 이런 체험이 그저 상상력인 것만은 아닌데, 그 안에는 세계와 자연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숨어있기에 그렇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오른쪽) 마음 구조 비교
신화는 문자가 없는 시대에 시작되어 구전되어왔다. 그러나 신화는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이야기해도 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엄숙한 의례와 함께 말해졌다. 신화 속에서 인간 정신은 외부의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심오한 무의식의 논리 작용을 전개한다. 옛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사고를 그저 세속적인 의식에 방치하면 안 된다고 여겼기에, 비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듯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신화와 일반적인 이야기를 구분한다. (보이면서 숨기기!)
대부분의 신화는 본래 연결되어 있던 것들에 그 상실된 연결성을 회복시켜주고, 상호관계의 균형이 깨진 것들에 다시 대칭성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지향점을 갖는다. 오래전 인간은 신화적 사고의 힘을 통해서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화는 감각의 논리를 사용하기에 ‘예술적’이다. 따라서 신화의 이해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예술적인 감각 또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1장.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신화의 수수께끼
어떤 신화들은 세계적으로 분포하는데, 지역과 사회구조와 언어가 전혀 다른 사회에서 비슷한 신화가 전해 내려온다. 이런 현상은 인류가 매머드를 쫓아 아주 먼 곳까지 빙하를 횡단하고 다니며 살던 중석기 시대에 신화적 사고가 체계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다가 각 지역에 정착한 이들에 의해 변화를 거듭해왔다고 말이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주제와 소재가 공유되는 대표적인 신화는 제비집에서 발견되는 신비한 돌인 ‘연석(燕石)’이 등장하는 <결혼하지 않는 아가씨>이다. 수많은 구혼자를 물리치는, 결혼하기 싫어하는 아가씨는 집 안에서만 숨어 지내며, 끈질기게 청혼하는 남성들에게 “제비집에 있는 자패(紫貝)를 가져오면 결혼하겠다”라고 약속한다. 아름다운 이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높은 제비집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용감한 구혼자는 제비집에 손을 뻗어 뭔가를 움켜쥐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다. 게다가 그가 손에 쥔 것은 자패가 아닌 제비 똥이다.
자패
제비집에 있다는 신비한 돌 혹은 조개는 순산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뱃속의 아이를 끄집어내는 행위와 집안에만 있는 아가씨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 감각적으로 이어지게 이야기가 구성되고 있다. 또한 세계 여러 곳에서 새집을 뒤지는 풍습은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들이 했던 성교육이다. 새집 속의 알이 깨지면 질척한 느낌이 성적인 감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화의 사고는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서로 연결시켜 나간다.
2장. 신화 논리가 선호하는 것
서구 논리철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공동체에는 특이한 규칙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누에콩을 먹지 말라”이고 또 하나는 “집안에 제비집을 짓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콩 역시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일본에서는 입춘에 콩을 던지며 ‘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라고 외친다. 그와 비슷한 의례가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도 있는데, 그들은 망자를 위한 의례에서 콩을 던진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망자의 장례나 매장 때 삶은 누에콩을 먹었다. 이런 것들은 콩이 죽은 자와 산자의 중개 역할을 한다고 믿는 신화적 사고를 보여준다.
누에콩
또한 콩은 콩깍지 안에 여러 개의 씨앗이 들어있으므로 풍요의 상징이자 여성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적과 여성적이라는 이원론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세계에서는 남성의 성기의 일부이지만 페니스보다 부드러운 고환-콩의 모습을 띤-을 보다 여성적인 것으로 여겼다. 여성의 성기 중 남자 성기와 유사성이 있는 클리토리스는 많은 곳에서 속어로 콩이라 불렸다. 종합하면, 남성적인 것 중에서 보다 여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중에서 보다 남성적인 것이 모두 ‘콩’으로 불린 셈이다. 오래된 신화적 사고방식 속에서 콩은 서로 대립하는 것을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철저하게 남성만으로 결성된 교단이었다. 그들은 금욕과 사고의 순수성을 추구하며, 순수하게 합리적 추론으로만 진리를 추구하려고 했다. 그랬기에 서로 대립하는 망자와 산자를 연결하고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중개하는 콩 같은 존재를 배제해야만 했을 것이다. 또한 순수한 합리적 논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콩을 배제함으로써, 그들 역시 콩을 그저 콩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여 내심 두려워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내겐 부조리하고도 재미있어 보였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신화는 불순한 논리의 수상한 사고로 간주되었고, 그들의 영향력이 이어지는 유럽에서는 신화가 점점 철학으로 취급받지 못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자유연상법과 헤겔의 변증법이 도래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