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신화로서의 신데렐라
동화로 잘 알려져 있는 <신데렐라>는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신화다. 디즈니사가 참조한 원작은 샤를 페로의 동화집이지만, 그 이전에도 여러 형태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또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도 신데렐라의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진 이야기들이 전승되고 있다. 1695년 간행된 <<페로 동화집>>은 프랑스 민간에서 전승되던 이야기를 궁정에 어울리도록 고상한 내용으로 바꾼 것이다.
신화의 이야기는 대부분 서두에 어떤 결손 상태가 제시되고 끝에 가서 이런 결손의 상태가 해소된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전승하던 사람들은 모두 서민들이었고, 이들은 생전에 스스로가 높은 지위에 오를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신데렐라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매우 낮은 지위의 재투성이와 높은 지위에 있던 왕자를 결혼으로써 중개한다. 높은 자와 낮은 자의 가치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던 사회에서 민화(民話)는 분리된 둘 간의 중개 기능을 도입함으로써 결합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거의 모든 민화에서 ‘결혼’이라는 해피엔드는 사회적 분리와 불균형을 상상력 속에서라도 중개하고 해소시키려는 배후 논리의 프로세스였다.
4장. 신데렐라의 원형을 찾아
신데렐라 이야기는 현재 채록되어 있는 것만도 450종이 넘는데, 민화는 대부분 이처럼 다양하고 방대한 버전(이본, 異本)이 존재한다. 신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많은 것들 중 어떤 것이 ‘결정적인 버전’이라는 생각은 의미가 없으며, 하나하나 모두가 특색을 가진 이본임을 인정해야 한다. 신화와 민화는 반드시 어딘가에 변형이 가해지고, 변형에 의해 새로운 판을 만들어 내는 프로세스 역시 계속되고 있다.
신화가 결정판을 만들 수 없는 이유는 문자에 의해 기록되지 않고 기억에 의지해서 그렇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전승되는 이야기의 배경과 환경 때문이다. 신화는 현실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사고 속에서 해결하려는 것이므로, 배경이 되는 현실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같은 사회라 하더라도 전승하는 이의 관심사에 따라 도 다른 변형을 일으키기도 한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이런 ‘자기 변형’의 프로세스가 대규모로 또한 아주 집요하게 반복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 이야기가 지닌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오랜 내력을 말해준다.
그럼 이번에는 19세기에 그림 형제 독일 민중 사이에서 전승되던 민화를 채집한 <재를 뒤집어쓴 소녀> 버전을 페로의 버전과 비교하며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에서는 우선, 유럽에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지던 개암나무가 등장한다. 사악한 계모와 언니들은 콩을 아궁이에 던져 넣고는 그것들을 다시 깨끗하게 골라내라며 재투성이 소녀를 괴롭힌다. 또한 콩은 앞 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양의성(兩意性)을 지닌 사물이다. 소녀로 하여금 항상 재를 뒤집어쓰게 만드는 ‘아궁이’ 역시 중개 기능이 있다. 불을 사용하여 자연 상태에서 문화로의 대전환을 일으킨 인류의 기억 속에서, 아궁이는 집 안에 있지만 다른 세계 혹은 저 세상으로의 전환점을 의미한다. 아궁이의 불 속에서 요정이나 악마, 악령 등 다른 세계의 존재가 튀어나오는 신화와 전설이 많은 지역에 남아있다.
더러운 아궁이로 내몰린 소녀는 사회적으로는 가장 열등한 지위다. 그러나 신화적 사고 속에서는 고대에 약속된 중개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불에 접근하는 특권을 갖는다. 이런 아궁이의 재속에 던져진 콩을 주워주는 새들의 등장은, 제비의 신화에서도 보았듯이, 인간의 문화와 자연의 세계를 중개함을 의미한다. 이렇듯 이야기 속에는 중개 기능을 가진 것들이 계속 퍼레이드식으로 등장한다. 개암나무 가지는 죽은 어머니-망자의 세계와 소녀를 연결시키고, 작은 새, 콩, 비둘기, 어머니의 영혼 모두가 이야기 속에서 삶과 죽음을 중개한다.
신데렐라 이야기 구조 분석
페로의 버전처럼 요정이 마술 지팡이를 한번 휘둘러 순식간에 모든 걸 변신시키는 행위는 신화적으로 볼 때는 별로 고상한 방법이 아니다. 신화는 모든 중개항 사이에 연속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데, 페로판 독자인 근대인들은 개암나무, 재, 콩, 작은 새들 같은 생태학적 서열과 이행 관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또한 페로의 이야기와 달리, 계모와 의붓 언니들을 위한 잔혹한 결말도 준비되어 있다. 두 의붓 언니는 계모의 지시에 따라 맞지 않는 구두에 발을 억지로 집어넣기 위해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잘라내지만, 결국 들통나고 만다. 그리고 재에서 콩을 골라내 소녀를 도와주던 새들은 왕자와 결혼하게 된 소녀에게 찾아온 두 의붓 언니의 눈을 쪼아버려 장님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잔혹한 측면은 고상한 페로 버전보다 훨씬 더 신화적 기능의 기반을 갖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두 버전의 이야기는 모두 결혼을 통한 해피앤딩이다.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자연의 다양한 중개는 일시적임에 비해, 결혼을 통한 두 사회의 중개는 영속적이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민화이기에 가능한 일이고, 신화에서는 이런 결론으로 끝맺지 않는다. 신화 속 매개체들의 중개는 영속적이지 않으며, 영속하는 것은 오히려 파탄한 상태다. 신화에서는 비극적인 파탄을 맞은 주인공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영속 상태를 유지한다. 행복한 결혼으로 정지되는 논리는, 실은 그 안에 뭔가 두려운 진실을 숨기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