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이란....
오늘은 유난히 추운 하루야.
아는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그런지
찬바람이 마음까지 스며든 것 같아.
박간호사,
나는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돼.
장례식장에서 유족을 위로하며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호상”.
너는 어떤 죽음이 호상이라고 생각하니?
어떤 이는
“고생을 덜 하고 가셨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더 나빠질 상황을 겪지 않고 떠나셨다”라고
표현하는 것 같아.
그 말들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호상은
“존엄성을 지키며 생을 마무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죽음.”이지 않을까 해...
떠날 이와 가족 모두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며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을 때.
떠나는 이가 남긴
“괜찮다, 고생했다, 고마웠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들리고, 또 진심으로 믿을 때.
그런 죽음을 맞이한 장례식장은
울음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조문객을 맞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고,
고인의 이야기를 담담히 꺼낼 수 있고,
잠깐이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 같아.
그건 슬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별과 슬픔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박간호사,
처음 하얀 간호사 가운을 입었던
20대의 너는 어땠니?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마음의 준비도 없었지만
‘직업’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야 했던 너.
너무 꽃다운 나이에, 경험치도 없이
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죽음의 순간에 서 있어야 했던 너였잖아.
정들었던 장기 환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라
이 병실, 저 병실을 서성였던 것도 나는 알고 있어.
한 환자의 심전도가 멈추는 순간을 지켜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환자의 꺼져가는 생을 붙잡기 위한
주사 준비를 해야 했던 너였잖아.
박간호사,
아마 그때 처음 알게 되었을 거야.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존재한다는 것.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다만 그 대상이
‘내가 아닐 뿐’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죽음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
그래서 사람들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몸소 겪기 전까지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먼 미래의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기도 하지.
참 아이러니하지 않아, 박간호사?
언제 불현듯 닥칠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가장 영원한 사람처럼 행동해.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게 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넌 어떨 것 같아, 박간호사?
“기필코 모두에게 찾아오는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이 분명한 사실 앞에서
너는 남아 있는 삶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렸니?
나는 말이야.
언젠가 멈출 걸 알기 때문에
오늘의 나를 좀 더 솔직하게,
좀 더 성실하게 대하며 살아내는 것.
예측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을
그나마 존엄하게 맞이하기 위해
이왕이면 선한 마음으로,
조금 손해 보는 마음으로
살아보려 노력하는 것.
그래서 가족들이 대면할
내 마지막 모습이
맑고 고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
그것이 내가
남은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정리해 보았어.
박간호사…
너는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