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분만실에서...
1999년,
너는 2년 반의 계약직 간호사 생활을 끝내고
분만실에 정규직 간호사로 발령을 받았어.
처음엔
생명의 탄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곳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근무를 시작했었지.
하지만 병원 어느 공간에서든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을 거야.
분만실 역시
보이지 않는 강인한 삶의 의지가 머무는
엄숙한 공간이라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을 테고.
--------------------------------------------
그곳에서 만난 산모들은
처음부터 엄마라는 이름을 지닌 채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었어.
어쩌면 각자의 시간을 통과하며
분만과 출산이라는 경계 너머로
엄마라는 존재로 이동하고 있는 듯
보였을 거야.
--------------------------------------------
다섯 번의 인공수정 끝에
쌍둥이를 가진 산모가 있었어.
조산기로 인해 자궁수축억제제를 사용하며
몇 주, 길게는 한두 달을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분만실 병실에 누워 지내야 했어.
그 산모는
자신의 힘든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몇 달을 누워 있어도 괜찮으니
37주까지 만이라도
쌍둥이들을 엄마 몸 안에서
키워주고 싶다고 했었지.
결코 쉽지 않았던
그 지난한 시간을
그토록 강인하게
버티게 한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몇 년의 기다림 끝에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
결국 열 달의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아기를 배 속에서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산모도 있었어.
더 잔인했던 건
아기를 보내는 일조차
출산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었어.
박간호사,
그때 너는
그 산모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걸 알아.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큰 상실과 슬픔 앞에서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건네는
어설픈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산모의 표정에서
너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어.
차라리 그 순간에는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테지.
-------------------------------------------
관련 지식도 없이
계획에 없던 아기가 찾아와
출산을 앞둔 어린 산모도 있었어.
학생처럼 앳된 얼굴에
두 눈에는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지.
지켜보던 어른의 입장에서도
그 장면은
쉽게 지나칠 수 없었을 거야.
안타까움이
오래 남았을 테니.
그 어린 산모는
출산의 고통 앞에서
너무나 당황해
어쩔 줄 몰라했고,
집에 가고 싶다며
오히려
엄마를 찾으며
울기도 했어.
출산 이후,
신생아실에서 들려오던 말들은
갓 태어난
천사 같은 아기가
입양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었어.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때 박간호사,
너는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겠지.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에는
철저한 준비와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
몇 번의 유산 끝에
마침내 출산을 맞이한
중년의 산모도 있었어.
그 긴 진통마저
미소로 견뎌내며
삼대독자를 얻었다는 기쁨에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고 있었어.
오랜 진통으로
눈은 실핏줄이 터져
충혈되어 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에는
사랑이 가득했어.
그 장면을 보며
너의 눈에도
조용한 보람이
차올랐다는 걸 알아.
그리고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 순간,
분명히 깨닫게 되었겠지.
--------------------------------------------
박간호사,
분만실에서 근무하며
너는 알게 되었을 거야.
출산의 과정과 진통은
철저히, 그리고 오롯이
산모 혼자의 몫이라는 걸.
열 시간이 넘는 진통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불가피하게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수술대에는 결국
산모 혼자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너는 수없이 지켜보았으니까.
그래서 너는 흔히들 얘기하는
‘모성은 본능이다’라는 말이
온전히 맞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거야.
지난한 진통의 시간,
수술대 위에
오롯이 혼자 누워 있어야 하는 순간들.
그 철저히 외로운 시간 속에서
아기가
배 속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산모에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생겨난
아기와의 강한 유대감이
평범한 여인을
강한 엄마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