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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Dec 03. 2021

이 방문을 열고 나가면..

욥의 고통

가끔 삶이 너무나 힘들 때, 어린아이들을 두고 했던 마시멜로 참기 실험을 생각해봅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접시에 마시멜로를 두고 방을 나오며 말합니다. 이것을 먹고 싶은 욕구를 조금만 참으면 나중에 마시멜로를 더 주겠다고 말이죠. 잠시의 충동을 못 참고 먹어버리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나중에 보상을 기대하며 꾹 참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결국 순간을 참아낸 그 아이들이 나중에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죠.

인생이 마시멜로 참기처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비유로 든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인생이란 긴 시간에 비해 너무도 짧은 그 찰나를 말하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아이에게 마시멜로를 참는 그 몇 분의 시간들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요? 이 방을 나가면 더 많은 마시멜로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것이 너무나 멀게 느껴집니다. 이 순간에 혀를 만족시키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는 그 짧은 순간을 자녀가 견뎌내 주길 바랍니다. 더 많은 마시멜로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단순히 마시멜로를 지금 먹나 나중에 먹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순간의 유혹을 참아내는 아이들이 내일을 위해 쾌락을 유보하고 인내하며 인생에서 훨씬 더 많은 결실을 맺어 결국 성공적인 삶을 살 것이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더 복잡다단하고 질고가 있는 인생을 고작 단순한 아이들의 게임 같은 마시멜로 참기에 비유해서 화가 나시나요? 제가 겪은 시련은 고작 달콤한 마시멜로 참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남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저에게 말합니다. 네가 무슨 고통이 있었다고 그래? 누구보다 복을 많이 받아 행복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말 그럴까요? 죽을 만큼 아팠던 사람은 신음조차 낼 수 없습니다. 그 아픔이 너무 커서 신음 소리조차 낼 힘이 없기 때문이죠.

당장 먹을 것 입을 것이 없고 병을 고칠 돈이 없거나 병 중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그 어떤 시련도 사치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겪어온 길을 알면 어느 누구도 쉽게 별 것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비극적 소설이라면 말도 안 되는 스토리라고 해도 이해가 가는데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 가끔은 제 인생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저와 비교할 수 없이 절대적인 고통을 받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단 한 번의 엄청난 고통을 허락하셨던 바로 욥의 경우입니다. 욥의 고통은 저 자신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으며 섬겼고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해한 적이 없는데도 한 명도 아닌 모든 사랑하는 자녀들이 죽음을 당하고 모든 재산과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본인은 질병에 시달리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친구들의 정죄와 비판 비웃음까지 받는다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 믿음을 굳건히 지킬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욥의 특별함과 위대함은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그 사무치는 슬픔과 고통 중에도 그는 하나님에게 탄식하면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하나님과 내기를 했다고, 그 둘의 내기에 욥만 피해를 받았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 이 우주의 끝과 시작을 알고 섭리를 아시는 분이 욥이 승리할 것을 몰랐을까요?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을 거예요. 결국 욥이 승리할 것이란 걸요. 그러면 알면서도 왜 이런 잔인한 내기를 하셨냐고요? 그것은 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사탄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든 시련 속에서도 끝내 그 아픔을 딛고 승리할 욥에게 더한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깊은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욥의 고통이 현실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임은 맞지만 좀 더 초월적인 관점에서 아니 이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원이라는 끝없는 무한대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아픔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간이야 현세의 삶만을 전부로 느끼기에 그 고통이 끝도 없는 고문처럼 느껴지지만 영원한 불멸의 생에 비교하면 욥의 일생에서 몇 년 간의 고통은 아주 잠시 스쳐 지나가는 먼지 같은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이 방의 문을 열고 나가면 더 넓은 바깥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요. 죽음이란 그 방의 문턱을 넘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사랑하는 이들이나 자녀의 죽음이 말로 표현 못하는 고통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선 문을 열고 나간 것에 불과한 존재의 자리바꿈일 뿐 일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곳에서 더 행복한 모습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 우리가 눈으로 보듯 그것을 믿는다면 슬퍼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전 이상한 버릇 하나가 생겼습니다. 내가 만약 창조주라면..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내 모든 문제가, 그 엄청나게 힘들었던 고통의 무게들이 정말 먼지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어요.

욥의 고통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여기에서 다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르는 고통과 슬픔이 많은 삶을 살았어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일 수도 있고요. 모든 것이 아픔인데도 단 한 가지의 축복을 허락하신 게 가족이에요. 그 단편적인 행복한 모습들이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큼 그렇게 보일 뿐이고요.

아주 오랫동안 고통받았던 불치병인 오빠와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지금 엄마의 불행한 상태와 이 모든 것이 연결된 아픔과 아직도 멈추지 않는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 사춘기 때부터 이 고통을 멈추기 위해 죽음을 생각했었고 혼자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기독교인이라 주님께 절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었어요.

누군가 그 고통을 모두 다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면 어느 누구도 절 보며 부럽다고 하지 않을 거예요. 저희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저와 똑같이 고통을 받은 사람이 우리 엄마일 거예요. 아니 어쩌면 저보다 더한 고통이었겠죠. 엄마를 생각하면 한없이 불쌍하고 아플 뿐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믿음이 있었더라면 정말 그랬더라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거예요. 같은 고통 속에 있어도 전 하나님이 있어서 행복을 선택할 수 있었거든요.

아마도 저에게 믿음이 없었더라면 전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든지, 살아있되 끝없이 세상을 저주하며 살든지 이렇게 온전한 가정을 꾸리고 살지도 못했을 거예요. 같은 고통을 마주하고 있는 엄마와 저의 완전히 다른 길을 보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극명하게 삶이 달라지는 것을 목도합니다. 제가 바라는 하나는 엄마가 주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 그것 하나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엄마의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생채기를 냅니다. 엄마의 고통이 전이되어 미칠 것 같이 힘이 드네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붙잡고 호소하며 울 뿐입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고통을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욥처럼 마지막 행복인 남은 내 가족, 엄마와 남편과 아이들마저 데려가신다면 전 어떡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미친 듯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단 한 가지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 어떤 고통을 주신다 하더라도 전 결국 주님께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왜냐하면 전 이미 그 방을 건너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방이 전부가 아니라 이 문을 나가면 끝없이 펼쳐진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요. 그곳에서 사랑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내 부모인 주님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울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엄마도 그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닦고 창 밖을 보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모든 슬퍼하는 분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오늘은 말하고 싶습니다. 이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통과 아픔이 없는 곳이 여기를 나가면 기다리고 있다고.. 그분이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라고..

그렇게 3년 전 오늘 내 곁을 멀리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참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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