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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Nov 30. 2021

드라마 '지옥'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쓰는 리뷰.

영화적인 연출에 관한 것은 아님. (스포 주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오히려 사람들을 복음이 부재한 상태로 만들어서 진짜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종교 지도자들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초자연적인 일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종교를 만들고 이단적인 행위를 하며 인간을 핍박하고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된 종교의 폐해와 그것을 선동하고 확산시키며 권력에 기생하는 미디어의 병폐에 대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지옥을 피하고자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이 종교가 가지는 힘과 권력으로 얼마나 많은 악을 행했는지.. 역사적으로 신과 정의란 이름으로 저지르는 악행으로 인해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무신론자가 되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 사람들은 지옥에 끌려가는 시연을 목격하며 내세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무작위로 지옥의 고지를 받는 이들이 생겨나고 새진리회란 종교단체를 이끄는 정진수 의장은 지옥에 끌려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설파한다.


대중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새진리회라는 이단에 복종하며 그들이 말하는 악을 행하지 않고 좀 더 정의로워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은 아빠의 횡령과 야동 본 것을 고발하고 지옥에 간 사람의 가족들은 연좌제로 고통을 당한다.


미디어는 지옥의 사자에게 끌려가는 사람들의 시연 모습을 생중계하고 공포를 더욱 조장한다. 새진리회를 극단적으로 추종하는 화살촉 무리들은 정의를 행한다는 명목과 새진리회의 비호 아래 지옥 고지를 받은 사람들과 가족을 불법적으로 괴롭히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그러나 새진리회를 만든 정진수 의장도 본인이 20년 전에 받은 고지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무작위로 선택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감추려 가짜 종교를 만들어 살인까지 저질렀던 것이고 갓 태어난 죄 없는 신생아도 지옥 고지를 받게 되며 드라마는 반전을 갖게 된다.


극 중 주요 인물들은, 지옥 고지는 자연재해 같은 현상일 뿐이며 신은 정의와 상관이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새 진리회는 신의 이름으로 악행 하는 이단적이고 불법적인 단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싸운다.


결국 부모의 사랑이 구원을 이룬다는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클라이맥스와 더불어 마지막에 시즌 2를 예고하는 에일리언 급의 깜짝 결말로 지옥에 갔던 여인이 부활하며 끝을 맺는다.


드라마에서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행위는 선하고 정의로와지고자 하는 종교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자들과 궤를 같이 한다. 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그들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종교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이러니하다. 정의란 칼을 마구 휘두르며 돈과 권력에 취한다. 그들이 진짜 신을 믿기는 한 걸까? 그들 자신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차라리 정진수 의장의 모습이 조금은 동정의 여지가 있다. 어린 시절 지옥 고지를 받고 20년 동안 공포에 떨며 벗어나고자 선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며 세상을 신의 뜻대로(본인의 생각에)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으니까..


하지만 그도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모순적인 존재이다.


이 드라마에 기독교는 없다. 단지 가짜 신과 종교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반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드라마 중심에 흐르는 사상이 '결국 지옥이란 것도 우연한 재해나 초자연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신은 인간의 일에 관여할 필요 없다'라는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이단 종교만을 비판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종교 행위란, 불가능한 것을 위해 인간이 하는 부질없는 노력이라는 전제하에 풍자와 은유로 빗댄다. 그렇게 은근히 기독교적인 복음에 반기를 들고 결국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교묘하게 비틀어서 단지 초자연적인 일로 치부하고 있다.


복음에서 천국과 지옥을 배제한다면 인간이 신을 믿는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지옥이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인간이 가는 곳이 아닌 무작위적인 자연 재해라 말하며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근본적으로 흔들면서 부정하고 있기에 문제가 된다.


'오징어 게임'보다 '지옥'이 더 반기독교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오징어 게임은 위선적인 기독교인의 악한 행태와 비리를 꼬집고 있는데 반해 (사실 중세 시대를 비롯해 어디에서나 참믿음이 없는 나쁜 종교인들은 존재했다. 우리는 그런 비판과 평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반성하고 교회를 자정해야 한다.) '지옥'은 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 자체를 회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타지 영화에서 신화적 인물이나 다른 차원의 세계가 등장하고 외계인이 나온다고 해서 반기독교적인 영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종교를 화두로 삼아 질문을 던지며 의심하게 하고 교리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며 악의적이다.


솔직히 천국과 지옥의 개념 자체가 안믿는 사람에겐 원시적이고 단순한 1차원의 이원론적 사상으로 느껴지기에 리쳐드 도킨스 같은 atheist에게는 공격하기 쉬운 먹잇감이 되곤 한다. 소위 깨어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신과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어리석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무신론자를 제외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내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통해 경험해보지 않은 인간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신을 믿는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는 기존의 무신론자들이 지옥 자체를 부정하던 것과는 다르게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정하면서 그 개념을 살짝 비트는 것이 사실 내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공감능력을 갖게 된다.


내가 현세에 하는 행동과 지옥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때 사람들은 더 안심하고 믿고 싶어질 것이다.


드라마는 지옥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는 종교인들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그 공포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며 공감을 얻고 있다. 모순적인 그 양극단이 묘하게 닮아있다.


드라마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모든 종교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인간들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고 지옥이란 무작위로 죄도 없는 자들도 갈 수 있는 랜덤의 자연재해 같은 것이며 우리 인간은 신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종교란 이름 아래 잃어버린 인간성의 상실을 회복하고 보이지 않는, 죽어 존재하는 지옥 따위를 믿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인본주의 사상이다.


지옥, 선과 악, 신의 계시와 정의, 종교에 대해 말하지만 이 드라마 어디에도 복음과 신앙은 찾이볼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진지하게 믿음에 대해 묻지 않는다. 그들은 지옥의 사자를 보았고 새진리회의 말대로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드라마에서 말하는 것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크리스천은 결코 행위로써 천국이나 지옥에 가지 않는다. 인간이 태어나서 한 번도 죄를 저지르지 않고 완전하고 순결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기에 저지르는 수많은 죄를 대속해주는 구원자인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비로소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진정한 믿음이 없이 종교만 있다면 드라마에서처럼 서로를 감시하고 단죄하며 정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위선적인 삶을 살 것이다.


진정한 신앙인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억지로 선한 행위를 하는자들이 아니다. 주님을 믿고 순종할 때에 내 안에서 모든 더러운 것들을 선으로 바꾸며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따르는 것이다. 


기독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진리는 사랑이다. 하나님과 내 이웃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없으면 신앙이 아니다. 그 사랑은 강박적인 가짜 행위가 아니라 진짜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저절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드라마에서는 지옥의 사자들이 무작위로 갑자기 나타나서 고지를 하고 한번 지옥 고지를 받은 사람은 어떤 행위로도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다. 정말 폭력적이고 무자비하며 잔인한 신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서 이미 지옥의 고지를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진짜 신은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다. 여기에 선택의 문이 있다. 당신은 어느 문을 열 것인가..


억지로 하는 행위가 아닌 구원과 용서받은 기쁨으로 가득 찬, 그 감격과 감사로 인해 내 안의 성령이 이끄는 대로 선하게 사는 쪽을 택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것은 누구의 강요도 없는 완전한 당신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이미 그 구원과 기쁨의 문을 연 자들인 우리는 그저 감사할 수밖에..


사랑이 없고 행위만 있는, 인간의 노력으로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며 정의의 탈을 쓰고 저지르는 악행 이야말로, 드라마 속에서 천사라고 말하지만 악의 사자인 초자연적인 그 무엇인가가  진짜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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