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TV는 영화를 싣고

by 김밥

TV는 영화를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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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본방 사수까지는 아니지만 그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을 때 다른 방송으로 채널을 돌린 적이 없었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기본적으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플롯으로 삼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리워하면서도 보겠다는 생각을 섣불리 하기가 힘들어서,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다가서는 게 괜한 짓일까 싶어서, 내 생각 속에 있을 뿐이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서, 그때는 속사정도 모르고 지나쳐 버린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 알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고마움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어서... 이런저런 지나간 일들을 세월 지나 흉금 없이 털어놓으며 묵은 앙금을 씻어내겠다는 느낌의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도 우선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제목이 내용에 딱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TV는 영화를 싣고”라는 제목은 그 프로그램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움에 어울리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에 빠져 살던 이들에게는, 주말마다 TV에서 방영되던 소위 ‘주말의 영화’는 가뭄에 단비 역할을 톡톡히 해낸 프로그램이었다. 영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넘쳐나는 마당에 돈 들이지 않고 자기 집 안방에서 볼 수 있다는 설정부터가 얼마나 훌륭한가. 신문 한 구석에 방영 예정 영화를 조그맣게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걸 기다리는 낙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지나간 영화를 마주한 어른들은 자신이 그 영화를 보던 시절 얘기도 하고, 그때 어떤 배우들과 어떤 영화들이 인기 있었는지 끼어들기도 했는데, 그걸 듣는 재미 또한 나쁘지 않았지만 때로는 영화 좀 보자며 툴툴거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에게는 잊고 지내던 그리움이 다시 찾아온 느낌의 영화였으니 어찌 그 시절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겠나 싶다.


어떤 영화가 찾아올지의 기대 때문에 주말이 기다려지던 시절이었다. 방영되는 영화 대부분이 상당히 오래된 영화들이었다. 그때로선 좀 더 최신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보석 같은 고전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그 영화들이 그때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이토록 영화를 좋아하진 못했을 것이다. 집에서는 오래된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는 새로운 영화를 봤던 셈인데, 신구(新舊) 영화를 병행해서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도 영화 보기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배우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만 하더라도 재미있었으니 말이다.


주말에 영화를 방영하던 프로그램의 제목도 다양했다. 흔히들 말하는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을 비롯해서 ‘토요명화’, ‘주말극장’, ‘일요극장’, ‘명작초대석’ 등등 여러 가지가 사용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 버티었던 제목이 “주말의 명화‘와 ”명화극장“이었기에 ”TV 영화“ 하면 누구나 기억하는 대표 제목의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19761225 주말영화 (매일경제).jpg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일요극장, 명작초대석 (1976년 12월 25일, 매일경제신문)
19731225 편성표_왕중와 파리의미국인 백색의공포 (조선).jpg 연말 연휴 TV 편성표 (1973년 12월 25일, 조선일보)


주말 외에 TV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던 때라면 크리스마스와 신년 연휴가 1순위였다. 그때 ’ 특선 영화‘가 제일 많이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신년 연휴에는 사흘 동안 세 채널에서 쉴 새 없이 영화를 방영했기 때문에 밖에 놀러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보지 못한 고전영화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연말이 되면 신문 한 면이 꽉 차게 실린 편성표를 꼼꼼하게 분석(?)하며 시간표를 짜야만 했다. 볼 게 많다는 즐거움과 동시에 채널 간 영화 방영 시간이 충돌하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즉 그중 어떤 영화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TV에서 영화를 챙겨보기 위해서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고민은 하나 더 있었다. 1980년의 언론통폐합으로 없어진 민영 TV 방송국 TBC(동양 방송) 때문이었다. 이 채널의 방송은 서울과 부산 언저리에만 나왔는데, 문제는 두 지역 간의 영화 방영에 1주일이라는 시차가 있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방영하고 1주일 뒤에야 부산에서 방영을 하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 TBC에서 방영하는 영화 한 주일 치를 못 보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겨울방학만 되면 서울에 있는 외가에 가서 십여 일 이상을 지내고 왔던 지라 외가에 갈 때만 되면 언제 출발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다. TBC에서 방영되는 영화 중에서 어떤 걸 안 볼지를 결정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게 고민이 될 만큼 그때는 TV 영화 감상에 흠뻑 빠져있었다.




TV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영화들을 싣고 왔었다. 그것들을 보는 재미는 정말로 쏠쏠했다. 그렇지만 극장처럼 여러 번 상영하지는 않는다는 큰 아쉬움이 있었다. 볼 기회라고는 그때 단 한 번이라고 생각하니 그날 그 시각에 찰 달라붙어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야말로 TV 영화 감상에 대한 절실함을 더더욱 부추겼다. 이제 가면 언제 올지 모르니 귀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도 잘한 짓이었노라고 자부하고 싶다.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보았던 영화들이었기에 그것에서 얻었던 감동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지나간 신문 지면에서 TV 프로그램 편성표를 뒤적거리다 보면 그때 만났던 영화들의 제목이 보인다. 그럴 때에는 머리와 가슴에 담았던 기억과 추억 그리고 기록으로 남아있는 사실을 짜기워서 그 영화들과 맺어졌던 그때의 상황을 끄집어내려고 애를 쓰게 된다. 만났을 때는 하나같이 반가웠지만 어떤 영화는 「그 시절의 영화」, 어떤 영화는 「내 마음의 영화」, 어떤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줄에 서게 된 이유가 새삼 궁금하다. 그 영화들을 그때의 기분으로 되새겨보고도 싶고 지금의 느낌으로 받아들여 보고도 싶다. 새로운 추억과 기억이 거기에 합류하기를 기대하면서.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