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늪에 뛰어들다
어릴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영화 이야기의 가닥이 잡히기는 한다. 베개 마구리에 달린 천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잠들며 듣던 할머니의 얘기는 ‘지성과 감천’이었고, 아버지께 읽어달라고 졸라서 들었던 이야기는 소년 잡지 <학원>에 실렸던 만화 ‘오성과 한음’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만화와 동화를 읽고 싶어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를 만화보다 먼저 보았으니 책보다는 영화가 먼저 다가온 셈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부모님 졸라서 가장 빨리 본 영화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고, TV가 집에 들어온 때도 그즈음이었으니, 의지를 갖고 영화를 보기 시작한 시기를 따지자면 영화관이나 TV나 거기서 거기였던 셈이다.
TV에서 영화를 골라보겠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한 시기는 나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고, 그것과 엮인 영화는 <성난 송아지>였다는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성난 송아지>는 1967년에 개봉한 영화였는데, 1970년 3월 22일의 ‘MBC 극장’에서 방영되었으니 개봉한 지 3년 만에 TV에 등장한 영화였다. TV에서 영화를 보는 것만도 신기했던 시절에 제법 최신 영화를 안방에서 보는 셈이었으니 <성난 송아지>는 선택받아 마땅한 영화였다는 얘기다. 그런 사정을 몰랐던 철부지는 다른 채널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당연히 대부분의 가족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본 영화가 <성난 송아지>였다. 그런 정황을 뚜렷이 기억이 나니 TV 영화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시기는 이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이후에 <성난 송아지>를 다시 본 적은 없지만, 당시에는 가족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의견이 막힘으로써 흐르기 시작했던 통한의 눈물이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감동의 눈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신문 기사나 KMDB의 해설을 보면 작품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영화로 나와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의 눈물겨운 송아지 사랑 이야기는 당시 우리 관객에게 통할 수 있었던 소재였나 보다. 신문 영화평에는 “관객의 누선(淚腺)을 억지로 자극시키려는 연출”이었다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통했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TV 영화 탐방기”는 해가 바뀔수록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이르러서는 매주 주말이 되면 '주말의 영화'가 어떤 영화들인지가 제일 궁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말만 되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영화를 꼭 봐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혀대니 가족들은 별 수 없이 영화 선택권을 내주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눈과 다리를 꼬집어 가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말겠다고 발악하는 꼴에 질려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 TV에서 본 영화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를 꼽으라면 <대지>, <왕중왕> 그리고 <피와 모래>를 떠올리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TV에서 본 시기가 빨라서 그렇다. 거기다가 반복해서 봤다는 기억까지 더해지니 분명한 나의 역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도 재방송이 되었던 시절이어서였다. 안방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생각에 재방송을 해도 그냥 보고 있었다. 특히 <왕중왕>은 크리스마스 지정 영화라고 생각될 정도로 많이 본 걸로 기억한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도 특집 영화라며 방영했는데,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또 방영할 정도였으니까. 다음 날 재방송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채널을 돌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TV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때 제일 싫었던 건 두 채널의 영화 시간이 겹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니 영화를 선택하는 데 최소한의 기준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우선시 된 것은 재미였다. 하지만 재미가 있을지 말지 보기도 전에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일단 어떤 이야기인지를 보고 선택했다. 동화나 만화처럼 어린 소년에게 뚜렷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소재 말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영화의 장르를 따진 셈이 된다. 남자아이다 보니 약한 자를 도와주는 서부의 사나이나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는 군인 아저씨 이야기에 먼저 눈이 갔던 셈이다. 하지만 보고 또 보면서 연륜이 쌓인 탓인지 그때 방영한 영화들중 기억에 남는 영화들을 펼쳐보면 한 장르에 쏠리지는 않는다. 아무리 어린 시절이라도 감동이란 장르하고는 별 상관이 없나 보다.
잠자리에 들어도 계속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그런 영화들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한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아 최소한 “내 마음의 영화”는 되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영화라면 지금도 한 번씩 다시 볼 때가 있겠지만, 그때 이후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영화도 있다. 그런 영화 제목을 우연히 마주칠 때면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랑은 비를 타고>, <선셋 대로>, <평원아>, <사진>, <오케스트라의 소녀>, <사랑은 비를 타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강가딘>, <나는 고백한다>, <잊지 못할 사랑>, <시벨의 일요일>, <워터프론트>, <엘머 갠트리>, <젊은 사자들>,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 <신부의 아버지>, <카운터포인트>.....
TV에서 보면서 그 분위기에 쏙 빠져들었던 영화를 꼽자면 끝이 없다. 그때는 어떻게 그 영화들을 선택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채널에서 방영하는 어떤 영화를 버리고 선택한 영화였을지 궁금해서다. 어른들의 말에 솔깃하여 선택한 영화도 있었고, 신문의 설명에 꽂혀 선택한 영화도 있었고, 때로는 막연하게 선택한 영화도 있었다. 귀에 솔깃한 장르에 먼저 눈이 갔던 게 첫 번째 선택 기준이 되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장르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갔다. 재미있게 본 영화에 등장하고 또 등장하는 배우의 이름에 눈이 가고, 감동을 먹었던 영화에 올라있던 감독의 이름까지 기억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를 선택하는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가로수길에 늘어서 있는 나무처럼 생각했었다. 가다가 볼만하면 보고 아니면 지나가고 그러다 보면 끝이 보이는 가로수길, 룰루랄라 경쾌하게 걸어갈 수 있는 가로수길에 서있는 나무 말이다. 그런데 가다 보니 영화의 세계란 숲처럼 울창하고 늪처럼 깊고 깊다는 사실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냥 재밌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배우도 모르고 감독도 모르고 얼마나 유명한 영화고 뭐고 아무 상관없이. 그러다가 서서히 영화에서 뭔가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같은 시간에 다른 채널에서 방영되는 영화를 포기하는 것이 그 시작점이었다. 어떤 이유로든 놓친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컸다. 결과적으로 TV는 사랑스러운 영화를 많이 실어다 줌과 동시에 어떤 영화를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도 같이 실어다 준 셈이다.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하고, 배우를 따라가기도 하고, 감독을 따라가기도 하고, 그 조합을 비교하며 따라가기도 하고... 영화의 선택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헤어날 수 없는 영화의 늪에 뛰어든 셈이었다.
TV가 영화를 실어 나르던 때를 생각하며 옛날 신문을 들추어 보니, 그 작은 화면에 몰입하여 영화를 지켜보던 그 시절도 떠오른다. 그 시절 소식을 담은 신문에서 똑같은 활자로 찍힌 그 시절 편성표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TV가 싣고 온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그 시절 신문을 길잡이 삼아 그 영화들을 다시 본다면 왠지 모르게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이 다시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