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란, 당신이 대지(Good Earth)야!

영화 속의 이야기, <대지>

by 김밥


어린 시절 TV에서 봤던 영화 중에 머리에 콱 박힐 정도의 인상을 남긴 영화가 몇 편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대지>다. 그 몇 편의 영화가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이유는, 웃기는 얘기지만 보고 또 봤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가 있으니까 봤겠지만 또 보여주니까 본 것이다. 영화도 재방송하던 때였다. 당시만 해도 독자적인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서였는지 방영했던 프로그램을 재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시청자의 반응이 좋았던 탓인지 모르지만 한 방송국에서 방영된 영화가 다른 방송국에서 다시 방영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내게 <대지>란, 한 방송국에서 재방송으로 다시 보기도 했으면서, 다른 방송국에서도 또 방영한다고 하니 또 보기도 했던 영화로 우선 기억한다. 그만큼 좋았었나 보다.


19721229 대지_편성표 (경향).jpg KBS 명화극장 (1972년 12월 29일, 경향신문)
19740929 TV편성표 (조선).jpg MBC 특선외화 (1974년 9월 29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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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The Good Earth,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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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지>를 처음 보면서 의아하기도 하면서 신기했던 점은 백인이 중국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다. 초등학생의 눈으로 봐도 분명히 서양 사람인데 중국 사람으로 나오고 있으니 그랬다. 당시 TV 영화는 우리나라 성우들의 더빙판으로 방영되었기 때문에 어떤 말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화질이 좋지 않은 흑백 화면으로도 서양인이 분장한 티가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대지>의 남녀 주연배우 - 왕룽 역할의 폴 무니(Paul Muni)와 오란 역할의 루이제 라이너(Luise Rainer) - 모두 이 영화 출연 이전에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을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었다. 그래서 중국인 캐릭터를 맡겼는지 모르겠지만 첫인상은 웃기고도 신기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니 그들은 중국인 왕룽과 오란이었다. 묘한 외모에 대한 첫인상은 날아가버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 버린 것이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도 올랐고, 내공이 대단한 중국 여인 오란 역할을 맡은 루이제 라이너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았으니 작품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였다. 세상이 달라지는 탓에 세월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영화도 있다. <대지> 또한 그런 면이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배역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굳이 서양인에게 동양인 역할을 맡길 필요도 없겠거니와 그런 분장이라면 인종주의로 보이기 십상이니 그런 배역으로 무리는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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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캐스팅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재미있다. 당시 제작자였던 어빙 탈버그는 중국계 배우 안나 메이 웡(Anna May Wong)을 오란 역에 캐스팅할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폴 무니가 남자 주연으로 정해지자, 헤이스 오피스(Hays Office) - 미국영화협회, 초대 회장이었던 사람(W. H. Hays)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 에서 여자 주연 역할을 중국인에게 맡기는 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루이제 라이너를 주연으로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인종 간의 결혼(miscegenation)”이 문제가 될 소지였다고 하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어쨌든 당시로도 애초부터 캐스팅을 서양 배우로 작정하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여자 주인공 오란의 캐스팅에 대하여 고민한 흔적을 봐도 그렇고, 다소 과도해 보이는 극단적(?) 외유내강 이미지를 내세워 아카데미상을 받은 루이제 라이너의 연기를 봐도 그렇듯, 제작사 측에서는 <대지>의 실질적 주인공을 “오란”으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Anna_May_Wong.jpg 오란 역할을 맡을 뻔했던 중국인 배우 안나 메이 웡




펄 벅의 소설 <대지>는 1931년에 발표가 되었는데, 이 소설이 인기를 얻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그런 예상을 뒤엎고 소설 <대지>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바람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셈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대지>에 대한 평가가 어땠을까? 원작이든 영화든 서양인의 시각으로 동양을 그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 당사자인 중국은 물론 같은 동양권의 우리나라에서 보는 시각도 서양하고 같을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나라에 <대지>가 처음 개봉했을 때의 기사를 한 번 찾아보았다.


19380203 대지_명치좌 (조선).jpg 1938년의 신문광고


... 가장 성공된 영화는 <잃어버린 지평선>, <대지>다. 그러나 이것은 일류영화라고 볼 수는 없다. (중략) 풀 무니는 좋은 배우이나 그에게 동양인의 심리를 재현하길 바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 사람이 이 영화에서와 같이 여자에게 대한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동양철학과 동양의 종교로 수천 년간 단련된 중국 사람의 심리는 보통 서양 사람이 생각지 못할 바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사실의 맛이 없다. (1937년 10월 23일, 동아일보)


중국 농민의 궁핍을 가혹히 묘사하여 실정과는 훨씬 거리가 먼 부분들이 많아서 중국인들은 이를 불쾌히 여겨 빈축을 산 경우가 많으므로 북경에서는 최근에 드디어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고... (1938년 2월 19일, 동아일보)



당시의 이런 기사들을 보면 서양이 묘사한 동양의 이미지에 심기가 불편했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듯 <대지>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개봉된 1938년 즈음의 평가는 박했지만, 1961년에 다시 개봉했을 때의 기사를 보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19610412 대지 (조선).jpg 1961년의 신문광고


대지를 업고 자연의 풍우(風雨)나 한발(旱魃)과 싸우며 개미 떼같이 꿈틀거리는 인간상의 묘출(描出)이나 대지가 주는 교훈적 생애의 정화 또는 귀의(歸依) 감정은 감명적이다. (1961년 4월 13일, 경향신문)


원작의 일부만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동양의 빈곤을 통감케 한다. (중략) 전반에서의 탁월한 농민의 생활 묘사는 놀라울 정도의 박력을 지니고 공감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중략) 이 영화는 “서양인이 그린 동양”이라는 점에서 고전적인 가치와 성과를 지니고 있다. (1961년 4월 12일, 조선일보)


1930년대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보려는 의지가 읽히는 면이 있다. 우리나라도 그때는 농업국가였다는 점에서 중국 농민의 모습을 남 보듯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60년대 기사에서 중국을 그린 영화임에도 ‘중국의 빈곤’이 아니라 ‘동양의 빈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만 봐도 1930년대의 기사보다 <대지>의 농민을 우리 입장으로 감정 이입하여 생각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우리 농민의 입장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그 절실함을 가깝게 느낄 수밖에 없으니 영화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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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good.earth.1937.720p.web-dl.h264-publichd.mkv_20250617_204012.292.jpg 메뚜기 떼 장면은, 메뚜기 떼 발생 소식을 듣고 현장에서 촬영한 것인 만큼 실감 나는 장면이었다.




<대지>라는 영화를 생각하면, 왕룽보다는 오란이 먼저 떠오른다. 오란이야말로 어려운 상황을 기어이 해결해 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오란의 삶은 오로지 인고(忍苦)의 세월이었다. 부모에게 버려졌고, 노예로 살았고,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에게 팔리듯 결혼했고, 죽도록 일했지만 죽고도 남을 만큼의 기아를 경험했고, 때문에 자식의 장애는 물론 죽음까지 견디어 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겨우 살 만해지니 남편은 첩을 들였고, 그 때문에 아들과 불화했고, 결국 며느리를 맞는 날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오란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인생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걸 미리 안다면 누가 그 역할을 맡겠다고 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옛 여성의 이야기라면 ‘한(恨)’을 빼고 얘기할 수 없지만, <대지>의 오란만큼 ‘한’으로 차고 넘치는 주인공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란을 보면, 서양 작가 펄 벅의 눈에 그 정도 계층의 중국 여성이 어떻게 보였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많은 일을 해내고 있음에도 대접받지 못하고,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오란에게 고생을 너무 시켜서 그랬는지 소설에서는 3권 중 1권의 끝부분에서 오란의 역할이 막을 내린다. 영화 <대지>의 내용도 딱 거기까지였다. 오란은 아들과 남편 그리고 시아버지를 부탁한다는 말을 며느리에게 남기고 눈을 감는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었던 오란임에도 끝까지 지니고 있었던 진주 두 알까지 손에서 내려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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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개봉했을 때 <대지>를 언급한 신문 칼럼에서 사용했던 단어가 있다. "귀의(歸依)"라는 표현이다. 사전에는 “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이라고 나와있다. 왕룽 일가가 택한 신의 한 수는 '귀의'를 실천한 것이었다.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었는데도 결단코 대지(땅)를 팔지 않았기에 그들이 대지로 돌아올 수 있었고, 최악의 자연재해였던 메뚜기 떼마저도 이겨내면서 대지의 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누가 보더라도 최고의 역할을 해낸 인물은 오란이었다. 그런 오란이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즉 귀의하는 때가 오자 영화도 막을 내린다. 원제인 “The Good Earth”의 의미처럼 풍요로운 대지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오란의 역할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에 왕룽의 입에서 읊조리듯 나온 한마디 독백에 가슴이 뭉클했다. 왕룽과 오란의 삶을 지켜보았다면, 아내를 대지로 돌려보내는 남편의 마음이 어떨지의 느낌 때문이었다. 복받치듯 다가오는 그런 울림이었다.


오란, 당신이 대지야.

O-Lan, You are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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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는 말

1938년과 1961년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신문에 실린 시사평 기사.

19380201 조선일보.jpg <대지> 시사평 (1938년 2월 1일, 조선일보)
19610413 경향신문.jpg <대지>, 교훈주는 귀의 감정 (1961년 4월 13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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