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이야기, <왕중왕>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영화를 TV로 실어 나르는 날 중의 하나였다. 어떤 크리스마스 영화일지 궁금한 날이기도 했다. <왕중왕>은 그런 기대를 가지게 한 첫 영화였다. “크리스마스 영화”로 지정된 영화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로 분명한 인상을 남긴 영화였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봤는데,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날 오후에도 방영했고,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도 방영했을 정도였으니 일단 빈도수부터가 압도적이었다. 한마디로 크리스마스가 되면 봐야 하는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예전의 방송 편성표를 찾아보니 1972년과 1973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 딱 그랬다. 느낌상으로는 그보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기록으로 확인되는 건 그 정도였다. 하여튼 어제 집에서 보고, 오늘 친구 집에 가서 보고, 작년에 보았지만 올해도 또 보고... 물론 똑같은 영화를 그렇게 보고 또 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이 문학전집의 ‘신약 이야기’에서 읽었던 신기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크리스마스 기운을 타고 와서는 눈앞에 뚜렷이 펼쳐진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옛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초등학교 때 교회 한 번 가보지 않은 이는 없을 거라고들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름에는 수박 먹으러 가고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선물 받으러 갔다며 웃기도 한다. 못 살던 시절의 스케치로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정도로 신자건 아니건 교회 문턱에 가보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거기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이 성경인 만큼 동화나 그림책 혹은 만화 한 컷이라도 예수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말하자면,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게 성경 이야기였다.
성경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는 좀 다른 느낌이어서 더 어려웠다. 다름 아닌 종교적 성격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나 우리나라 민담에도 신기하고 신비한 이야기는 있지만 그것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서였다. 물 위를 걷고, 죽은 사람도 살려내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였다는 기적의 차원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린이들이 읽는 위인전에 "예수" 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위인이라면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은 너무나 많았지만, 그림마다 얼굴 생김새가 달라 보였다. 그런 상황에 처해있었던 어린 마음으로는, 예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런 시원함을 안겨준 영화가 바로 <왕중왕>이었다.
알고 보니, 예수의 얼굴을 처음으로 드러낸 영화가 <왕중왕>이었다. 처음 <왕중왕>을 보았을 때는 흔히 접하던 액자 속의 예수 얼굴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를 한두 점 본 게 아니었으니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으로만 보던 신약 이야기가 눈앞에서 실감 나게 펼쳐지고 있으니 흥미진진했다. 은은하면서도 장엄하게 들리는 음악도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몫했었다. 신비롭고 경건한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었으니까. <왕중왕>은 <벤허>보다 2년 뒤에 만들어졌는데, 앞서 개봉하여 성공한 영화 <벤허>와 연관 있어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포스터도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음악 역시 <벤허>의 음악을 맡았던 헝가리 출신 작곡가 미클로스 로자(Miklos Rozsa)의 작품이었다.
어린 마음에 <왕중왕>이 좋았던 첫 번째 이유는 예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벤허>에서는 예수의 뒷모습밖에 보여주지 않아서 서운했기 때문이었다. 성스럽고 신비한 위인이라고 생각한 만큼 영화에서라도 얼굴을 내놓고 움직이는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호기심 천국이었던 어린 초등학생의 마음은 그랬다.
예전 신문에서 영화 <왕중왕>을 소개하던 글을 찾아보니 당시의 이런저런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 그런데 이 영화는 사실을 사실적으로 알알이 거두고는 있지만 종교적 감동이 덜하다. 예수가 인격자이긴 해도 결국 인간이었기 때문에 리얼한 묘사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나친 노정이 감동을 덜하게 한 요인이다. 비슷한 영화인 <벤허>의 경우 예수의 뒷모습과 손만 보였어도 감동적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정통적으로 리얼학 다루려 한 것이 특색이라 쳐도 인격자로서의 예수를 재현할 배우가 문제다. 세속에 묻혀서도 세속을 떠난 위엄이란, 연기자의 얼굴을 통해 화면에서 도저히 재현될 수 없다는 일대난점을 무릅쓰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미스'인데 이러한 미스는 그대로 관객이 눌러볼 도리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남는 것은 스펙터클한 화면과 성경교재적인 이야기... 그러나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서 세속적일 수도 있고 감동적일 수도 있다.
(1963년 2월 25일 경향신문 '새 영화 <왕중왕>')
인간의 모습보다는 신의 모습을 기대했었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하지만 또 다른 신문 칼럼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지금 시내 모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에 <왕중왕>이라는 것이 있다. 대체로 신약성경에 충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어서 신자 아닌 사람들도 인간 "예수"의 고뇌에 깊은 감명을 느낄 수 있다.
(1963년 2월 9일 조선일보 '만물상'}
위인전에 나온 다른 위인처럼,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처럼 예수의 행적을 얼굴과 함께 보여줘서 그 존재를 실감하는 게 좋았던 어린이와 비슷한 시선도 있었던 셈이다.
지금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종교 영화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왕중왕>을 꼽는다. 어릴 때의 추억도 추억이지만 예수의 일대기를 보았던 첫 번째 영화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 <왕중왕>을 볼 때의 인상이라면, 예수의 탄생과 살아간 나날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뭔가 특별한 걸 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왕중왕>을 연출한 니콜라스 레이(Nicholas Ray) 감독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 속의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반항적(rebel) 인물로 묘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알고 보니, <왕중왕>이 좋았던 건 그의 연출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당시로는 의견이 분분했다지만 예수 역할을 맡았던 제프리 헌터의 연기에도 친근감을 느꼈었다. 어린 나에게 <왕중왕>이란, 예수 그리고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알기 쉽게 찬찬히 보여주는 느낌의 상냥한 영화였다. 예수의 탄생과 행적 그리고 최후를 그 주변과 함께 실감 나게 본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예수를 위대한 인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장면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성경을 토대로 한 <왕중왕>인 만큼 성경 구절이 많이 등장하지만, 보면 볼수록 세속적 정서에 찌든 귀에 쏙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소위 산상설교를 하며 보리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의 기적을 이룬 갈릴리 언덕 장면에서 당신은 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다니냐는 군중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가 답하기를,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으면 날 믿지 않겠지요. 하지만 나는 믿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은 믿을 것이오.
성경 구절을 그대로 옮기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나를 믿어라. (요한복음 14장 11절)
한마디로,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믿으라는 얘기다. 성경 구절보다는 영화의 대사 쪽이 속세의 폐부를 깊게 찌르는 투로 들렸다. 진실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달콤함에는 금방 귀를 여는 그런 작태 말이다. 예수가 행한 기적은 믿음이 약한 이들이 믿게끔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좋은 말씀을 믿고 살라는 말을 전하고자 노력하지만 이득이 생기는 기적에만 관심 있는 인간들을 어찌하겠는가. 그런 식의 기적을 남발하는 게 구원의 길인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예수의 노력과 고민을 직접 보고 있다는 느낌이 <왕중왕>의 매력이었다.
<왕중왕>은 수천 년 전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가 그때 무엇을 살피고 고민하다가 삶을 마치게 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 그 속에는 지금까지도 되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는 인간들의 사는 모습이 예수의 삶과 같이 담겨있다. <왕중왕>에 나오는 이런저런 장면으로 인하여 역사적 종교적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예수의 탄생, 살아온 과정,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영화는 계속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거기에 따른 지적도 이어질 것이다. 세월이 지나서 봐도 <왕중왕>이란 영화는, 얼굴을 드러낸 채 예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첫 번째 시도였다는 점만으로도 의미 있는 도전을 한 영화였고, 여러 가지 면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낸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킹 오브 킹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많은 관객이 보았다는 소문도 한몫했지만, 제목을 번역하면 '왕중왕'인 만큼 <왕중왕>의 애니메이션 버전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만든 <킹 오브 킹스>일까?
<왕중왕>, 나의 영원한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