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같은 해피엔딩의 첫 경험

영화 속의 이야기, <오케스트라의 소녀>

by 김밥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TV를 보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영화였다. 한마디로 “이게 웬 떡이냐!”처럼 걸렸던 영화였다. 오케스트라가 나오네! 유명한 지휘자도 나오네! 예쁘게 생긴 소녀가 노래를 잘도 부르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면 볼수록 몰입이 되다가,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놀라버렸다. 세상에 저런 꿈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니. 그런 마무리 장면을 처음으로 봤던 영화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세상을 본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준 첫 번째 영화였던 셈이다.



19710117 TV편성표 (조선).jpg 1971년 1월 17일 조선일보
19710116 오케스트라의 소녀 (동아).jpg 1971년 1월 16일 동아일보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0334.260.jpg



오케스트라의 소녀 (One Hundred Men and A Girl, 1937)


오케스트라의 소녀_포스터01.jpg



대공황이라고 부르는 경제 공황(Great Depression)이 미국에 불어닥친 시기는 대략 1929년부터 1939년까지로 되어 있다. 먹고살기는 힘들고, 사회적 갈등은 심해지고, 점점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1937년 영화이니 그런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다. 그때는 서민의 고통을 잊게 해 주고 싶은 듯 즐겁고 유쾌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진 걸로 알려져 있다.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딱 그 시기의 그런 영화로, 경제 대공황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대표적 영화로 기록되어 있다. 뮤지컬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는 구성이었고, 이후 미국의 뮤지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가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소녀 배우 디아나 더빈(Deanna Durbin)의 음악적 재능을 앞세울 생각으로 기획된 영화고, 유명한 클래식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까지 캐스팅하여 음악만으로도 관객의 시선을 끌어모아보겠다고 작정한 영화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좌충우돌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목적을 향해 달리는 패트리샤 카드웰(디아나 더빈)이라는 철부지 소녀의 코미디 터치 모험담이다. 그 모험이란 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는 일을 해내겠다고 설쳐대는 것이니 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938년에 이 영화를 개봉한 기록이 있다. 서울시 중구 초동의 당시 명칭은 약초정(若草町)이었는데, 1935년에 거기 지어진 “약초극장”이란 곳에서 개봉되었다. 약초극장은 1930년대에 지어진 대형(1,000석 이상) 토키극장의 효시라고 하는데, 1938년도 신문광고에는 줄여서 “약극(若劇)”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이 영화의 신문광고에 붙은 일어 문구가 재미있다. 13세 이하 아이들의 입장을 사절한다는 내용이다. 입장을 사절한다는 내용의 문구도 재미있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녀> 같은 영화에 어린이를 입장시키지 않겠다는 이유가 궁금하다. 어른 앉힐 자리도 모자랄 판인데 요금도 작게 내는 어린 관객은 받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19380325 오케스트라의 소녀_일본어 신문광고 (조선).jpg 일본어 신문광고 (1938년 3월 25일, 조선일보)


19390217 오케스트라의 소녀_일본어 신문광고 (조선).jpg 일본어 신문 광고 (1939년 2월 17일, 조선일보)


1959년에 개봉했을 때의 신문광고에서는 디아나 더빈이 부르는 노래 제목까지 소개하며 선전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때는 이미 우리나라에 디아나 더빈의 팬이 많았나 보다.


19590330 오케스트라의 소녀_신문광고 (조선).jpg 신문 광고 (1959년 3월 30일, 조선일보)


넘치는 감격과 흥분 속에 눈물을 자아내는 디아나 더빈 힛트의 명곡!!

알렐루야(Exultate, jubilate), 축배의 노래(Drinking Song from 'La traviata‘), 번쩍이는 비(It’s raining sunbeams), 마음의 자유(A heart that’s free)


<오케스트라의 소녀>를 재개봉하며 디아나 더빈의 노래 제목까지 친절하게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걸 보니 대단한 성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영화의 역사를 찾아보니 1959년이 “우리나라의 영화 중흥기”로 되어 있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몇십 편에 그치던 영화 제작 편수가 1959년에는 100편이 넘었다고 하니 그런 얘기 들을 만도 하다. 영화 선전 광고에도 정성을 들일 만큼 영화 산업이 발전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235.048.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328.610.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443.210.jpg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연주자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배고픈 음악인이 오케스트라를 찾아가서 자신을 채용해 줄 것을 제안해 보지만 그냥 쫓겨나고 말았다. 그 트롬본 연주자에게는 음악적 재능이 넘치며 재기 발랄한 패트리샤라는 딸이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패트리샤가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의 어려운 상황을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고 애쓰며 소동을 벌이는 게 이 영화의 플롯이다. 결국 패트리샤의 음악적 재능을 유명 지휘자가 알게 되면서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아버지를 비롯한 실직 연주자들로 조직된 오케스트라가 유명 지휘자와 함께 공연을 하게 된다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필사적 노력을 기울인 끝에 나름의 결과를 얻어내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형식이다.


지금 보면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로서 진부해 보일 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를 주로 다룬다는 지적에 어울리는. 그런 전형이 만들어진 시작점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가 <오케스트라의 소녀>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구석이 있다. 그 시기의 특성인 뮤지컬과 코미디적 요소는 가지고 있지만, 어려운 시절의 모습도 같이 영화에 담았다는 점이다.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실제적인 상황을 감추려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어떻게든 그걸 극복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낙관적인 결말로만 따지면 판타지에 가까워 보이지만 결코 꿈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꿈같이 이루어진 콘서트로 막을 내렸지 그 연주자들이 그로부터 잘 먹고 잘살았다는 소식까지 남기지는 않았으니 낙관으로 일관했다고 볼 수는 없다. 마지막 순간에 희망이 보이는 결과를 터뜨림으로써 감동과 함께 용기를 북돋우려 한 점에 주목하고 싶다.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526.498.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717.002.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622.777.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714.218.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647.330.jpg




<오케스트라의 소녀>가 개봉된 지 어언 9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이 영화를 TV에서 처음 본 지도 어지간한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어려운 시절이라면 우리도 겪어 보았다. 그럴 때는 어떤 영화가 등장하는 게 좋을까? 정답이 존재할 리는 없지만 세계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위기가 있었던 시절의 영화들이 남아 있으니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미래라는 게 있다는 사실은 인간만이 안다고 하니 미래에의 희망을 떠올릴 수 있는 영화 쪽이 좋지 않은가. 미래가 있다는 사실만 알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게 인간의 한계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필요한 게 꿈과 희망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때를 떠올리면, 저런 꿈같은 일이 벌어지다니 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며 덤으로 감동까지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보니, 비현실적이라거나 낙관과 낙천으로 일관한다는 비판적 지적이 먼저 떠올랐다. <오케스트라의 소녀>와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에 대한 한결같은 지적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좋은 점을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복권 샀을 때의 기분에 비유하고 싶다. 당첨되었을 때의 상상이 아니라 샀을 때의 기분 말이다. 1등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를 떠올리며 웃음 짓는 그런 기분. 그런 마음이 속절없는 인간의 마음 아닌가.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기 힘들다는 걸 알지만 그런 장면에서 희망에의 의지를 넌지시 가지게 되는. 당치도 않은 일에 좌고우면 하는 주인공의 행보에 혀를 차며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기어이 해내는 장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손뼉 치며 눈물 흘리는 그런 마음. 도대체 왜 그런 반응이 나올까? 막연하게라도 자신의 삶을 응원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 아닐까.


편하게 지켜보는 영화에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본전 다 뽑는 일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됨으로써 판타지 같은 낙천적 낙관적 해피엔딩 영화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게 된 시발점이 바로 이 영화였다. 그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지적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응원하게 되는 운명적 장르의 영화를 난생처음 만난 게 <오케스트라의 소녀>였다.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736.394.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745.307.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750.170.jpg
One.Hundred.Men.And.A.Girl.1937.1080p.BluRay.x264.AAC-[YTS.MX].mp4_20251230_151812.274.jpg




수요일 연재
이전 04화신의 이야기, 인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