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배우, <내가 마지막 본 파리>
엘리자베스 테일러라고 하면, ‘세계에서 제일 예쁜 여성’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녀의 외모만이 화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연기 운운보다는 어떤 영화에서 더 예뻤다는 얘기가 주제가 되던. 그녀를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에 <내가 마지막 본 파리>라는 영화를 TV에서 보았다. 역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는 느낌을 만났다. 방긋 웃는 모습만이 아니라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으니까. 여전한 모습으로 시작했지만 안타깝고 쓸쓸한 느낌으로 끝을 맺었다. 애정 영화라면 적당히 패스하던 중학생에게는 그런 장르에서도 울림이 느껴진다는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내가 마지막 본 파리>는 그녀의 인상이 가장 뚜렷했던 영화로 기억에 남았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라는 영화가 뇌리에 박히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헬렌(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이 카페의 벽에 그려져 있는 설정부터가 가슴을 흔드는 요인이었다. 그 시절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눈에는 저 그림이 어떻게 보일까. 보는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만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거기에 방점을 찍은 것은 주제음악의 멜로디였다. 영화의 제목이 비롯되었던 노래 ‘The last time I saw Paris’의 멜로디.
<내가 마지막 본 파리>을 보고 나서 그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먹먹하게 다가왔던 그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느낌이었다. 영화음악 음반을 사서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라디오에서도 연주 음악을 들었고, 음반에서도 악단의 연주 음악으로 듣다 보니 영화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잊어버렸다. 처음부터 연주곡으로 존재한 음악인 줄 알았던 거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리지널곡은 아카데미 주제가상(Original Song) - 제롬 컨(Jerome Kern) 작곡, 오스카 해머스타인 주니어(Oscar Hammerstein II) 작사 - 까지 받았던 노래였다. 아카데미상 수상은 <내가 마지막 본 파리>보다 훨씬 전인 1941년의 영화 <Lady Be Good>에서 일구어낸 성과였다. 점입가경은 그때도 그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수상 자체가 논란이 되기도 했단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에 기가 막히게 어울리기에 그 영화를 위한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들었는데 애초에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곡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비하인드 스트리를 들어보니 꼭 그렇게 낙심할(?) 이유는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갔었던 때의 파리를 떠올리며 작사가가 쓴 시를 보고 작곡가가 멜로디를 붙이게 되었다는 사연을 가진 노래였다. 언제 어디선가 느꼈던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순간 그때를 생각하니 느껴지는 지금의 쓸쓸함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곡이라면 상관없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에 처음으로 개봉하였고, 1965년에 재개봉했던 흔적이 신문광고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제목은 원제목 그대로인데, 일본의 제목을 보니 “雨の朝巴里に死す(비 내리는 아침 파리에서 죽다)"라고 되어 있었다. 완전히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맡은 역할 헬렌에게 갖다 바치는 제목이다. 이미 주연 여배우로의 행보가 시작된 때였고, 주변 배우들을 보더라도 이 영화의 대세는 그녀라고 생각해서 그런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정말로 헬렌(엘리자베스 테일러)이 쥐고 있었으니 그런 제목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훨씬 더 그런 감상에 빠지기 쉬웠을 것 같기는 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이 영화로 말미암아 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 전의 출연작들은 주연이라고 해도 장식에 지나지 않는 배역이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자 주연의 역할이 커서 여자 주연이라고 하더라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미모만으로도 관객을 모을 수 있는 배우였다면 그런 식으로 기용되기 더 쉽지 않았을까.
<내가 마지막 본 파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1956년의 신문 칼럼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였기에 그런지 그 역할에 상당히 비판적인 평을 싣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신문에는 그녀가 맡은 헬렌이란 캐릭터에 대하여 ”사색과는 담을 쌓고 있는 전후파의 젊은 여성“이라고 표현했으며, 또 다른 신문에서는 ”자유방임(自由放任)대로 살아가는 아내“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인기를 업고 그녀가 맡은 캐릭터가 새로운 여성상으로 부각될까 봐 살짝 걱정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칼럼의 끝부분에서, ”차라리 거기에서 유행의 모범을 찾기보다는 화면에서 감동되는 마음의 정리가 한층 뜻있는 일“이라고 마무리 짓는 걸 보면.
이 영화는 리처드 브룩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문학작품을 영화화하는 걸 즐기는 감독이니까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이라서 나섰을 것 같다. 피츠제럴드의 원작 소설 제목은 「다시 찾아온 바빌론 (Babylon Revisited)」이었다. 제작사의 개입으로 영화에서는 시대도 분위기도 원작과는 다르게 각색되었기 때문에 리처드 브룩스 감독은 자신의 작품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리처드 브룩스 감독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만들어졌더라면 어떤 영화가 탄생했을까? 그랬더라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역할이 풍기는 분위기가 다를 것 같기도 하고. 리즈 테일러가 관객에게 그만큼 주목받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후에도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여주인공과 감독으로 다시 만난 걸 보면 리처드 브룩스 감독이 리즈 테일러의 연기를 만만하게 보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비평에서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다분히 원작의 의미가 좁아졌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며 감독 스스로 불만스러워했다고 하지만 리즈 테일러가 헬렌의 역할을 매력적으로 해냄으로써 감성적 로맨스 드라마로 관객에게 나름의 감동을 준 것은 사실이다. 헬렌의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은 앙팡 테리블에 가깝게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정하고 지성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을 업고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되는 결말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했다. 그런 캐릭터의 매력은 22세 청춘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에서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생각하면 항상 우리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안성기 주연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이다. 여주인공 혜린 역할을 당시 신인이었던 황신혜가 맡았는데, 그때 황신혜의 장점은 한마디로 미모였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이 영화 데뷔작이었다. 굳이 이 영화를 들먹이는 건 황신혜가 맡은 혜린이란 캐릭터 때문이다. 아주 잘 나가는 연극배우 여대생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던 혜린은 세상의 풍파를 겪게 되면서 결국은 순수 청년 영민(안성기)의 사랑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세상을 떠난다. 우스운 장면이 우선되던 분위기의 영화가 마지막에는 울지 않을 수 없는 감성 로맨스로 막을 내리게 된 건 비극을 받아들인 혜린 덕분(?)이었다. 바로 그 부분이 <기쁜 우리 젊은 날>과 <내가 마지막 본 파리>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병실에서의 마지막 그녀 모습도 그렇고, 그녀가 낳은 딸과 그녀가 남기고 간 남편의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주는 상황까지 비슷하다. 청순가련형이 아니라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 주인공이 잘 나가다가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된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서사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배우의 역할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비극적 사랑이 있었다는 점에서다. <내가 마지막 본 파리>에서는 ”파리“로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는 ”젊은 날“로 표현했던 시절의 잃어버린 사랑 이야기였으니까.
<내가 마지막 본 파리>에서 받은 감동은 파리에 있는 카페에 그려진 헬렌의 벽화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그 배경에는 주제음악의 멜로디가 흘러야 한다. 비록 결말은 슬프더라도 그 추억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어서다. 화려하고 오만했던 시절에 잃어버린 사랑을 소중하게 기억하겠다는 느낌 그대로. 지나간 시절의 후회와 반성에서 비롯된 그리움이니까. 삶에 웃음과 행복만이 있을 리는 없다. 당연히 슬픔과 고통도 따른다. 그래서 그리움이나 향수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을까. 돌아갈 수 없는, 돌려받지 못하는,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시름이나 설움이 생각나는 말. <내가 마지막 본 파리>의 헬렌은 바로 그런 걸 의미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슬프고 아픈 것이다. 그래도 기어이 그때 거기에 있었던 헬렌의 벽화를 바라보는 게 굳이 감상적(感傷的)이기만 한 일일까.
<내가 마지막 본 파리>의 감동은 똑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나름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멜로디는 쓸쓸하지만 따뜻한 느낌의 아련한 추억 같고, 가사는 그 속에 담긴 그리운 기억 같아서다.
The last time I saw Paris, her heart was warm and gay.
I heard the laughter of her heart in every street cafe.
내가 마지막으로 파리를 보았을 때, 그녀의 마음은 따뜻하고 명랑했어.
거리의 카페마다 그녀의 사랑스런 웃음소리가 들렸지.
The last time I saw Paris, her heart was warm and gay.
No matter how they change her, I'll remember her that way. That way.
내가 마지막으로 파리를 보았을 때, 그녀의 마음은 따뜻하고 명랑했어.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바꾸어놓든, 난 그녀를 그 모습으로만 기억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