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
작년에 한국을 다녀 간 후 오래지 않아 다시 한국에 왔다. 은퇴 후 시간이 많아진 덕에 누릴 수 있는 여유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처음 몇 년은 영주권이 안 나와서 미국을 떠나지 못했다. 그 후 몇 년은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한국에 올 여유가 없었고 아이들이 집을 떠난 후에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내 손을 필요로 할 때에만 급히 와서 그만큼 머물렀다. 그래서 작년에 처음 여유 있게, 휴가처럼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여러 여행계획을 세웠다. 미국에서 여행 유튜브들을 탐색하고 어디를 갈지 계획을 세우고 꿈에 부풀었다.
한 달씩 두 번 머무는 동안 철원, 양구, 제주도, 부여, 통영, 속초 그리고 서울을 관광객으로 돌아 다녔다. 서울에서는 나의 옛 집, 모교들을 포함하여 내가 한국을 떠난 후 지어진 대형 공원들을 방문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훑은 관광지들은 무지 편리했으나 매력적이진 않았다는 게 나의 아쉬운 총평이다..
꿈꾸던 한국 여행에서 내가 실망했던 첫 번째는 대부분의 관광지들이 자연을 보존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연을 파괴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한국에는 어딜 가도 둘레길이라는 게 있다. 바닷가를 둘러싸고, 협곡을 뚫고 절벽을 가로질러 만들어 놨다. 계곡을 가도 원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조형물들과 계단들과 번쩍이는 조명들이 뒤덮고 있다. 나무 데크나 철로로 만든 계단들이 한라산에도 설악산에도 북한산에도 있다. 사람이 가지 못할 해안선이 있으면 아마 그 지역의 지자체장들은 미개발 혹은 저개발 했다고 비난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산 길에도 바닷가에도 데크를 못 깔은 곳엔 가마니가 깔려 있어 길 잃을, 혹은 흙 밟을 염려가 없다.
오르막은 계단이 뒤덮고 있어 건강한 젊은이는 슬리퍼나 하이힐을 신고 걸어도 될 만큼 편리할지 모르나 무릎이 좋지 못한 노인들이 작은 보폭으로 느리지만 편안한 속도로 가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한다. 긴 여행은 외국으로 가고 국내에서는 짧은 여행만 하는 사람들의 여행 방식에서 이익을 취하려면 최대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볼 수 있게 해야 관광객이 올 거라는 마음들이 이리 과도한 개발들을 하게 했나 이해하려 애써 본다. 이곳에서 사진 찍고 저곳에서 사진 찍는 방식의 여행들 때문에 곳곳에 사진 찍을 거리들을 만드느라 여러 명산 입구에 터무니없는 크기의 캐릭터 조형물들을 세워 놓은 건가 짐작도 해 본다.
"이런 건 어울리지도 않고 보기 흉한데 왜 세워 놨지?"라는 내 질문에 한 친구가 답했다.
"다 누가 해 먹었어".
아무튼 이 과도한 개발의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나로서는 자연을 보러 가는 곳마다 파괴된 자연만 보는 것 같아 불쾌했다. 편리함의 과도한 추구가 본질을 해하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아마 난 이미 미국 사람이 되어 버려 그들이 자연을 취급하는 방식에 길들여진 건지도 모른다.
미국의 어느 공원에 가도 돌이나 풀, 무엇이라도 가져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나는 늘 작은 돌멩이 하나를 훔치곤 해서 원칙주의자인 딸로부터 혼이 나곤 한다.) 쓰러진 나무들, 산불로 불 탄 나무들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자연 그대로, 인간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언젠가 한국에서 온 손님과 몇 시간 자동차 여행을 한 아이들이 그분이 한 말을 전하며 몹시 화를 낸 일이 있었다. 구불구불한 좁은 산 길을 몇 시간 간 후 손님은 '한국이라면 터널 뻥뻥 뚫어서 순식간에 갈 길을 이리 게으르게 방치해 놓았다, 속이 터진다, '라고 한 것이다. 아이들은 그의 말이 잠깐의 편리함을 위해 자연은 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느꼈던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느끼는 실망감도 이와 비슷했다. 강릉 속초까지 두 시간이면 가는 건 좋다 치자. 산속 산책로까지 데크나 시멘트로 뒤덮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취향의 문제 혹은 장단점이 다 있는 문제일지 모른다. 다만 나는 나의 실망에 대해 말하는 것뿐.
투덜투덜 두 번째는 인증제도가 너무 불편하다 외국인에게는. 한국 전화번호가 없는 나는 식당 예약도 이벤트 티켓 구매도 템플스테이 예약도, Y-24 같은 전자책이나 기타 등등의 온라인 구매도 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한국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드라마를 구매하여 시청하려 해도 한국 전화번호나 주민등록번호로 인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글로벌 시대에 이 무슨 쇄국정책인지 모르겠다. 인증 방법을 전화와 함께 이멜 주소로도 할 수 있게 하면 되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미국의 모든 금융기관들이 두 방법을 병행한다.
세 번째 투덜투덜, 너무 빨리 모든 걸 헐고, 더 높이 더 꽉 차게 새로 짓는다.
나의 옛 학교들조차 나를 배신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뒷산에는 아카시아 숲이 있었다. 봄에 중간고사를 볼 때가 아카시아가 꽃잎을 날리는 시기였다. 하필 고1 때 내가 딱 그쪽 창가에 앉았던 날 아카시아는 만발하고 바람은 세게 불어 폭설이 쏟아지는 모습처럼 흰 아카시아 꽃잎이 날리는 걸 영어시험 시간에 보게 되었다. 나는 시험을 백지로 냈다. 이깟 시험 때문에 이 황홀한 광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그때는 내신 같은 건 없었고 선생님도 엄마도 아무도 나의 영어 점수에 대해 내게 묻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나의 아카시아 숲은 사라지고 언덕을 깍고, 새로운 건물들이 꽉 차게 들어서 있었다. 내가 다니던 예쁜 학교는 빨간 벽돌의 1900년대 건물들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운치와 낭만, 역사적 아름다움을 자랑했으나 이제는 옛 건물은 남아 있되, 압도하는 현대식 빌딩 사이에서 낮은, 초라한, 낡은 벽돌집으로 보일 뿐이었다.
내가 서울로 전학 와서 1년간 다녔던 중학교도 산자락에 있었다. 나는 아침에 제일 먼저 빈 교실에 들어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예쁘게 커튼을 걷어 묶는 게 좋았다. 교실의 왼쪽 벽 전체가 유리창이었고 일찍 가면 일출도 볼 수 있었다. 창문 밖은 넓은 운동장이 있고 언덕 밑의 집들은 시야를 가리기엔 나지막해서 3층의 3학년 교실에선 고개를 들지 않아도 거의 눈앞의 하늘을 막힘없이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소나기와 함께 먹구름이 뒤 덮인 하늘 위로 번개가 번쩍이는 장광을 마치 불꽃 놀이 하는 광경을 보듯 선생님 포함, 전 학급이 넋 놓고 구경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가보니 운동장엔 높은 철망이 둘러져 있고 학교 벽에 붙여 지은 새 건물들, 아파트들이 상당 부분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실은 창고가 된 것 같았고 그 뒤로 또 다른 새 건물이 들어섰고, 무엇보다 학교 이름조차 바뀌어 나의 중학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투덜이의 네 번째 이야기는 사람들이다. 미술관에서 나와 작품 사이에 끼어들어 사진 찍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행인이나 다른 운전자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너무 길어지므로 투덜이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미국에서 이십 년 넘게 살다 보니 한국이 낯선 것 같다.
P.S. 나는 오늘 내가 미국 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세계를 향해 사과해야 한다고 느낀다. 비록 인종적으로 감정적으로 한국을 더 가깝게 느끼고, 한국과 미국이 축구를 한다면 당연 한국을 응원할 것이지만 법적으론 미국인이다. 미약한 나의 사과가 미국으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에게 그들의 가족들에게 닿을 리도 없겠으나 나라도 사과해야겠다.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