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미국 병원 17

간호사와 근력

by 새 날

병원마다 다르긴 하겠으나 캘리포니아에서 간호사들이 해야 하는 업무와 한국에서 내가 일하던 시절에 간호사가 해야 하는 업무는 크게 달랐다.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기본 간호가 누구의 일이냐 하는 점이다. 기본 간호란 환자를 씻기고 먹이고 입히는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걸 뜻한다. 한국에서는 기본 간호는 가족의 책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가족이나 연고자가 없는 환자들은 병원에서 채용한 간호보조원이나 간병인들이 기본 간호를 제공했다. 한국에서 간호사는 적어도 10명 이상, 내가 일하던 당시에는 보통 14-16명의 환자를 맡아야 했으므로 기본 간호까지 제공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얼마 전에 부천의 한 병원에서 2주일 동안 어머니를 간병한 일이 있었는데, 그 병원은 '여사님'이라 부르는 직원들을 두고 그분들이 기본 간호 영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반면에 간호사 한 명이 네 명의 환자를 돌보는 캘리포니아의 병원에서는 이를 모두 간호사가 해야 했다. 예를 들어 어떤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화장실을 가야 한다면 미국의 가족들은 간호사를 부르고 본인들은 복도로 나간다. 그들은 이걸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거라고 한다. 어떤 관점에서는 동의할 만한 이야기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프라이버시에 속했던 영역을 나의 사랑하는 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


단순히 침대 안에서 자세를 바꾸는 것도 스스로는 불가능한 환자들이 있다. 움직이지 않는 환자는 욕창이 생기기 쉬우므로 이런 환자들은 두 시간마다 체위 변경을 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한국인들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침대 주변에서 간호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를 부축하고, 돌려 눕히고 바로 앉는 걸 도와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간호사들의 부상도 적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의 내가 일하던 병원은 신규 채용 때뿐 아니라 일 년에 한 번씩 바른 자세와 환자 이동시 사용하는 각종 장비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들의 업무 중 부상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주로 심장 수술 환자들을 돌봤는데 심장 수술은 앞가슴뼈를 완전히 절단하고 심장을 수술한 후 철사로 가슴뼈를 봉합한다. 수술 후 환자가 자신의 상체를 지지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사용할 경우 가슴 근육이 수축하면 가슴뼈의 봉합 부분이 열리면서 때로는 감염으로까지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환자들에게 절대 팔을 짚고 상체를 지지하거나 침대 옆 난간을 잡고 일어나지 않도록 계속 교육했다. 그러므로 환자가 움직이고 싶으면 간호사를 호출해야 하고 간호사들은 환자의 상체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또 수술 후에는 호흡관리도 중요하므로 환자 침상 머리 쪽을 45도 정도 올린 상태로 유지하는데 환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꾸 미끄러진다. 미끄러진 상태에서는 호흡도 어렵고 허리도 아프다. 그러다 보니 간호사들은 환자를 다시 편한 자세로 되돌리는 일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했다. 이 일은 먼저 침대 머리 쪽을 수평으로 눕히고 환자 밑에 깔린 보조 시트를 양쪽에서 잡고 환자를 들어 침대 머리 쪽으로 올리는 것이다. 규정상 80kg 이하인 환자는 두 명, 80kg 이상인 환자는 4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들 바쁜 가운데 네 명을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내가 일을 시작했던 이십여 년 전에는 장비도 넉넉지 않아 무거운 환자를 옮길 때 사용할 수 있는 보조 장비는 전 병원에 한대뿐이어서 그걸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누군가 가서 그걸 가져다가 환자를 돕는 데 사용하는 건 시간 낭비가 너무 컸다. 결국 일은 부상으로 이어졌다.


내가 미국 병원에서 일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일이다. 심장 수술 환자를 침대 머리 쪽으로 들어 옮기는 순간 갑자기 허리 뒷 중앙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누군가 커다란 해머로 내 허리를 내려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사고로 나는 추간판 파열 진단을 받고 두 달 정도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때는 다시 일을 할 수 없게 될까 하는 공포가 허리 통증보다 더 컸다. 결국 다시 일에 복귀하긴 하였으나 허리 통증은 만성이 되어 임상을 떠날 때까지 진통소염제를 하루에도 몇 번씩 먹어야 했다. 이때 나의 보스였던 매니저는 왜 규정대로 4명을 모아서 하지 않았느냐며 부상의 책임이 전적으로 나에게 있음을 확인시켰다.


내가 병가에서 복귀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책임간호사 격인 clinical coordinator가 나를 불렀다. 가보니 그녀는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환자 옆에 서서 그 환자를 들어 올리자고 했다. 나는 규정상 이 환자는 네 명이 필요하니 두 명을 더 모은 후 나를 다시 부르면 와서 돕겠다고 했다. 그녀도 폐암으로 부분 폐 절제술을 받고 쉬다가 업무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고 나 역시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우리 둘은 절대 저 환자를 들 수 없으니 두 명이 더 필요하다, 그 사이 나는 급한 일을 처리하고 오겠다고 하고 그 병실을 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 찾아보니 코디네이터가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의 충고를 무시하고 다시 다른 간호사 한 명과 그 환자를 들다가 폐수술한 부위가 터졌다는 것이었다. 그 후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몇년 후에 병원은 환자를 들어 올리는 장비들을 병동마다 비치했다. 그렇다 한들 장비를 좁은 병실로 가져와 설치하고 환자를 움직이는 건 상당히 번거롭다. 만약 간호사로 미국에서 취업하길 원하는 분이 있다면 영어 공부 뿐 아니가 근력 운동을 하는 것도 성공적인 간호사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제는 비만치료제가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으니 미국인들의 평균 체중이 좀 줄을려나 모르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경험한 미국 병원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