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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영 Nov 12. 2024

휴직일기 #1

휴직을 했다.

새로운 한 달이 시작하는 날이지만 힘들었던 일주일의 끝이었던 금요일에 정신과에 갔다.

일본에서는 정신과라고 하기보다는 멘탈 클리닉이라고 많이 부르는 듯 하다.


왜 갈 생각을 했냐면, 현재 내 상태가 어떤지 내가 느끼는 감정 외에 다른 사람의 시선, 특히 전문가가 보기에 어떤지 판단해줬으면 해서였다.


 밤에 몇 번이고 울리던 온콜에, 반드시 맞춰야하는 프로젝트 릴리즈 기한, 팀원들이 맡은 4개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스케줄 관리와 툭하면 터지는 트러블들. 그와중에 2025년도 개발일정을 업데이트하는데 눈앞이 깜깜하고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담당중인 프로젝트는 개발중에 갑작스럽게 요건이 바뀐다던가, 긴급대응으로 프로젝트를 할 수 없다거나 하는 와중에 도저히 데드라인을 맞출수가 없었다. 담당 프로덕트 매니저가 실력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어서 그 사람이 놓친것에 대해서 내가 챙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데드라인은 맞추려고 주말에도 몰래 일을 해서 어떻게든 일정을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슬슬 팀원들과 1:1 미팅도 해라, 좀더 팀원들 관리에 시간을 할애해라 라는 이야기는 들을때마다 숨막혔다. 사실 지금 팀원들과 나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관심을 갖고 챙겨주고 싶은 사람들도 아니었다.

 사실 내가 팀리더였기에 상사가 무리한 요구를 한건 아니었다. 갑자기 너 관리직으로 올리고 싶은데 괜찮아? 라고 물었을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받아들인 내가 문제였지. 

 하루아침에 리더가 된 상황에서 현재 짊어지고 있는것들이 너무 벅찼고, 팀원들이 물어보는 선택지에 내가 틀린 선택을 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과, 내 선택에 대한 결과에 대한 실망감과 패배감이 매일같이 느껴졌다. (실제로는 좋은 선택을 한적도 있고 틀린 선택을 한 적이 있다.) 


 지치고 힘드니까 그냥 나한테 질문하는것들 하나하나에 뾰족하게 반응하게 하고 한껏 짜증을 낸적도 있었다.

상대방이 1이라는 질문을 했을때 이전의 나라면 1+α를 줬을것을 1을 퉁명스럽게 줬다. 그렇게 행동한 즉시 후회하고 내 자신에게 실망감이 들었다.

 기분이 행동이 되게 하지 말아라, 힘들때도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 강한사람이다 등의 말이 나의 죄책감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나도 아는데, 진짜 잘 안 되더라. 난 그릇이 작은가봐, 애초에 내가 리더직을 맡는게 맞나 라는 생각 등등. 그런데 그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는 너무나 바쁜 하루하루.


 그러다가 어떤 미팅에서 내 잘못은 아니지만 팀 서비스 퀄리티에 대해 내가 대표로 욕을 먹게 된 사건이 터지면서 그래도 열심히 해보자라는 끈을 놓게 만들었다.

 내가 왜 이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열심히 해야하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도 충분하지 않으면 난 그냥 안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팀 마음에 안 들고 개발도 이제 안 하고 싶은 와중에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이젠 나도 못해먹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는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사라졌고, 앞에 늘어져있는 문제들을 수습하는 것 자체가 버거워지고 하고싶지 않아졌다. 일상에서도 무기력감을 느끼고 누가 건들기만 하면 눈물이 날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게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는것인지 아님 진짜로 휴식이 필요한건지 누군가의 확인이 필요했다.

난 운이 좋아서 내 선택을 지지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친구들이 아니라 제 3자의 의견이 필요했다.


의사는 진단서를 써줬고 이걸 회사에 내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휴직이 시작됐다.

일단 한 달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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