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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영 Aug 15. 2022

내가 직업을 정하게 된 과정

 자기 적성이 뭔지 모르겠고, 어떤 걸 원하는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난 이런 단계를 통해 직업을 정할 수 있었다고 공유를 하고 싶어서 글을 적어본다.


 나는 현재 일본에 있는 IT기업에서 개발자로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며 개발자로는 5년 차고, 혼자 외국에서 산지는 7년 차다. 한국에서는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로 영한 번역일을 했었다. NGO에서 인턴을 하고 영어유치원에서 일을 한 적도 있고, 호주에서 약 2년간 워홀을 하면서 스시집 서빙 및 스시만들기, 고기공장, 약품 공장, 하우스키핑, 오페어의 일을 해봤다. 대학은 처음에 예대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인문계로 편입을 했다.


 나열한 것처럼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이것저것 많이 해봤는데, 이 이유는 내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는 인문계고등학교를 나와서 4년제 대학에 들어간 사회적으로 암묵적으로 '바른 길'의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당연히 졸업 후에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적성검사와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이었다. 눈에 띄는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도전정신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내 주위에도 80프로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20프로는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기에, 더더욱 이것이 당연한 인생궤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된 대로 되지 않는다. 고3 때 수능을 망쳤듯이, 서류와 적성검사를 넘겨도 1차, 2차 면접에서 떨어지고 면접을 가서도 말도 안 되는 압박면접과 면접관의 각종 헛소리에 상처를 받으며 점점 세상과 단절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직장을 가지지 못하니 부모님도 버거워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대한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수능을 못 봤을 때 아버지의 무언의 실망감과 압박이 끔찍했기에 또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이 모르는 회사에 들어갔을 때의 주변의 시선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사회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벗어나는걸 굉장히 싫어했는데, 성격이 예민하고 회복이 느려서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답답했다.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약 25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고, 토익점수도 따고 자격증도 따고 인턴도 했는데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전부터 해외에서 일을 해볼까, 라는 생각은 있었다. 어렸을 때 짧지만 해외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고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아둔 돈도 없고, 나에게만 의지하는 엄마를 보며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뚜렷한 목표가 없었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직업은 워낙에 인기가 많아서 정규직으로 바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망설여졌다. 남의 얘기만 듣고 안 하는 것도 많았고,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어떤 게 안 좋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쉽게 포기했다. 그저 표류하기만 하는 상황이어서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때 운 좋게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커리어 상담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서 신청을 했는데, 10회의 상담을 통해서 나와 가족을 구별 짓는 법과 함께, 내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 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맞는 성격과 내 성격과는 괴리가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일을 찾지 않았던 것이었고, 내가 원하던 일은 그저 좋아 보여서 하고 싶었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난 내성적인 사람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걸 스트레스받아하는데, 방송일은 목소리 크고 적극적인 사람이 잘 맞는 직업이었다. 또 워낙에 경쟁이 심한 분야여서 신입으로 들어가는 게 힘든데, 내가 튀는 아이디어나 방송을 엄청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상담 이후에는 목표가 아예 사라졌고,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없으니 뭘 하든 '실패'는 없다 라는 생각과 함께 호주 워홀을 가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돈을 얼마큼 모아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세워지니 정규직인지 아닌지 일자리는 가리지 않았다. 그랬더니 되려 일할 기회가 쉽게 찾아왔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영어였기에, 모 IT회사의 모바일 어플의 번역 알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또 다른 IT회사의 번역팀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돈을 모아서 워홀을 가게 되었다.


 워홀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안정적인 루트 외에 정말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백그라운드의 사람들을 만나며 모두가 한 길로 갈 필요는 없다는 걸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 나한테 맞을지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해볼 수 있었기에, 이 직업을 몇 년간 가져야 한다라는 압박이 없었다. 또 내가 그동안 부모님 덕분에 정말 안정적으로 살았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한 달 뒤에는 길바닥에서 자야 한다는 압박을 나이 27살에 처음 느껴본 거다. 


 왜 해외에서 개발자로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난 원래 전자제품을 좋아해서 윈도 스마트폰도 써보고 PDA형식의 폰도 썼었다. 그때 처음 와이파이가 되는 폰을 쓰면서 폰 애플리케이션이라는 거에 관심을 갖게 되었었고, (그때가 막 아이폰 3gs가 나온 시점이었다) 대학시절 애플리케이션 기획을 하면서 개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뜬구름을 잡는 기분이라 막연히 개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대+문과대를 다니고 수포자인 내가 감히 개발을?이라는 생각으로 시도조차 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IT회사에서 번역일을 할 때, End user로 QA도 하고 번역 툴의 버그도 여러 차례 찾으면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또 호주에서 오페어를 할 때, 나를 채용해준 부부가 개발자로 시작해서 IT 컨설팅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외국에서 이 정도로 성공하려면 개발자를 하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시드니에서 다닌 사람들이었는데, 현재 시드니 부촌에 2층짜리 집에서 출산 후에도 바로 일을 하고 있는 부인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마침 아는 언니가 일본에 개발자로 취업하는 프로그램에 신청한다고 해서 나도 이후에 워홀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가서 같은 프로그램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3년간 일단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 보자 라는걸 실천에 옮겼더니, 30살이어도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았다. 

한국에서 일할 생각은 안했냐,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30살 여자가 신입 개발자로 일하는 건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환경이 훨씬 나아진 것 같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워낙 한국에서는 취업준비로 고생을 했기에, 일을 잘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없었다.


 물론 일본에 와서 초반에 고생은 했지만 현재는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일을 하던 내가 지금은 한 분야와 회사에서 3년 이상 일을 하고 있다. 오히려 현재는 이 안정적인 환경이 나에게 독이 될까 봐 다시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걸 다시 버릴걸 생각하니 아까워서 마음이 약해지는데, 그럼에도 계속 도전은 해야 된다라는 다짐을 되새기려고 글을 써본다.


뭐든 내가 직접 안 해보면 모른다. 그냥 크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 뭐 목숨 걸고 하늘에서 낙하산 없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단 끌리면 시도해보자. 실패를 해도 경험은 무조건 체득되고 맷집이 강해진다. 끊임없이 성공과 실패를 해도 50 후반에 또다시 성공을 위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하는 사람도 직접 봤다. 2-30대면 아직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내가 이 정도 했으니, 이 만큼의 보상은 받아야 된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허상을 부수고 내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 게 무엇이고 어떤 게 잘 맞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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