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숫자로 생명을 보다

숫자 사이에 빠진 숨결 하나

by 웅토닌

서양의학은 인간을 숫자로 바라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측정 가능한 것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혈압, 산소포화도, 심박수, 종양표지자 수치

몸은 수치로 번역되고,

의사는 그 숫자를 통해 판단을 내립니다.


이러한 시선은

동양의학이 균형과 조화의 흐름으로 몸을 이해한다면,

서양의학은 객관성과 보편성을 통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언어는 분명히 강력합니다.

숫자는 개인의 주관이나 느낌에 흔들리지 않으며,

재현 가능하고, 위험을 빠르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혈, 감염, 쇼크, 심정지와 같은 응급 상황에서

이 방식은 실제로 수많은 생명을 살려왔습니다.


서양의학이 구축해 온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영상의학, 그리고 중환자 치료 체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생존의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공로는 어떠한 치유 이론과 비교하더라도

분명하고 압도적인 성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는 언제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병실에서 종종 마주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병실에서 종종 마주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가슴 답답함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으신 분입니다.
산소포화도는 정상 범위이고,
혈압도 안정적이며 심박수 역시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의료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수치는 괜찮습니다.”

추가 검사는 진행되지 않고,
환자분은 안도의 설명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계신 그분의 얼굴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 어깨가 먼저 들썩이고, 말은 문장 끝에서 자주 끊깁니다. 숨은 들어오지만 끝까지 빠져나가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분은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상하네요… 검사는 다 괜찮다는데
숨이 계속 막힌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숫자와 감각 사이의 간극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산소포화도는 혈액 속 산소의 비율을 알려주지만,
숨이 막히는 느낌까지 대신 느껴주지는 못합니다.

심박수는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는 말해 주지만,
그 박동이 불안인지, 긴장인지, 혹은 공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서양의학의 언어는 몸을 매우 정확하게 분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분해된 조각들 사이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흐르는지에 대해서는
종종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생깁니다.
몸은 괜찮다고 하는데 본인은 여전히 힘들다는 감각만 남게 됩니다. 설명되지 않는 증상 앞에서
사람은 홀로 남겨진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서양의학의 실패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양의학은
자신의 역할을 매우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언어가 모든 순간을 설명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저희가 종종 잊고 있을 뿐입니다.

수치와 감각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간극의 중심에는 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숨은 숫자로 환원되기 이전에 이미 느낌으로 존재합니다.
“숨이 막힌다”는 표현은 산소가 부족하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삶의 속도가 몸을 앞질렀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치유의 과정에서 숫자를 버릴 필요도 없으며,
감각만을 절대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언어를 함께 듣는 일입니다.

숫자가 말해 주는 몸과 숨이 말해 주는 몸을 같은 자리에서 함께 바라볼 때,
숫자 사이에 빠져 있던 숨결 하나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다음 4회|숨이 얕으면 마음은 빨라진다

- 불안은 생각이 아니라 호흡
이 숨과 마음이 어떻게 함께 흔들리는지,
왜 숨이 얕아질수록 마음은 더 빨라지는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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