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왜 숨을 먼저 묻는가

- 기는 보이지 않지만 흐른다

by 웅토닌

중의 병원에서 실습을 했을 때다.

라오다이푸는 아프냐고 묻기 전에 숨을 묻는다.

언제부터 숨이 가빠졌는지,

어디에서 막히는지, 숨이 편해지는 순간은 있는지.

처음에는 그 질문이 이해되지 않았다.


생물학과 생리학을 전공하고 중국으로 건너갔을 때,

동양의학은 솔직히 낯설다 못해 당혹스러웠다.

해부학적 구조도, 생화학적 경로도 아닌

이야기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음양오행(陰陽五行), 기(氣)·혈(血)·정(精),

경락(經絡). 현미경으로도,

수치로도 확인할 수 없는 개념들.

한문으로 적힌 병기들은

내가 배워온 의학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질병은 원인과 결과로 설명되어야 했고,

증상은 기전으로 환원되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익숙하게 배워온 방식이었다.


그래서 동양의학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끊임없이 번역하려 들었다.

이 기는 무엇에 해당하는가,

이 혈은 어떤 생리적 현상인가,

정은 어떤 물질로 이해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런 질문들은 번번이 멈춰 섰다.

동양의학이 바라보는 몸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연결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정체관념(整体觀念), 변증론치(辨證論治).

인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

유기적인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되었다.

오장(五臟)을 중심으로

육부(六腑), 오체(五體), 오관(五官),

구규(九竅)가 연결되고,

경락을 통해 상하와 내외가 이어지며

기혈과 진액의 흐름이 조율된다.


한마디로 건강하다는 것은 오행의 균형과 조화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설명은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조금씩 몸의 감각과 맞물리기 시작했다.

정의로 이해되지 않던 개념들이

관찰을 통해 자리를 잡아갔다.


동양의학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사람을 먼저 보여주었다.

태극에서 숨으로 - 음양의 상호작용

기억에 남는 한 임상 장면이 있다.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지만

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고 호소하던 사람이었다.

불안장애라는 진단을 받았고,

약을 복용했지만 호전은 더뎠다.

그날 따이푸는 긴 설명 없이 숨을 먼저 보았다.


말을 하다 자주 멈추는지,

숨을 들이마신 뒤

내쉬는 데 시간이 걸리는지,

어깨와 목이 숨과 함께 움직이는지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병은 마음에 있지만, 막힌 곳은 숨이다.”

치료는 불안을 직접 겨냥하지 않았다.

가슴과 횡격막, 호흡의 길을 여는 데 집중했다.


며칠 뒤, 그 사람은 말했다.

“숨이 먼저 편해지니까 마음이 따라옵니다.”

그 순간, 기·혈·정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몸의 상태를 한 번에 읽어내는

관계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숨이 막히면 기가 막히고,

기가 막히면 혈이 정체되며,

혈이 정체되면 통증과 불안이 생긴다.

“통즉불통, 불통즉통”이라는 말이

문장이 아니라 현장이 되었다.


그 이후로

숨은 더 이상 단순한 산소 교환이 아니었다.

동양의학에서 숨은

몸과 마음이 만나는 가장 바깥의 경계였고,

가장 원초적인 진단 도구였다.


또 다른 환자가 떠오른다.

늘 속이 더부룩하고 트림이 잦았으며,

잠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검사에서는 위염 소견이 있었지만

증상에 비해 설명이 부족했다.


그는 늘 급했고, 말이 빠르고,

숨이 위로 떠 있었다.

가슴이 먼저 움직이고

아랫배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 한의학의 상생(相生)·상극(相剋), 상승(相乘)과 상모(相侮)

따이푸는 이 사람을 두고

오행의 말을 꺼냈다.

“목(木)이 너무 성하면 토(土)가 눌립니다.”

간(木)은 생각보다 강했고,

비·위(土)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분노가 풀리지 않으니

목은 치솟고, 토는 소화하고 내려보내는 힘을 잃었다.

상극(相剋)의 관계였다.


치료는 위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억눌린 목을 먼저 풀었다.

옆구리와 늑간,

숨이 옆으로 퍼지지 못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숨이 가슴에만 머물지 않고

배로 내려가자 며칠 뒤 이런 말이 돌아왔다.


“속이 편해졌어요.

화를 내고 나면 더부룩해지는 것도 줄었고요.”

그 다음에야 비·위를 보강했다.

토가 자리를 잡자 금(金)이 숨을 고르게 만들었고,

숨이 안정되니 신(水)의 깊은 피로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상극으로 시작된 문제는 상생으로 풀려갔다.


그 장면에서 상생과 상극은 도표가 아니었다.

몸 안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힘의 이동이었다.


그때 다시 깨달았다.

동양의학이 숨을 먼저 묻는 이유는

숨이 오행의 균형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어디가 과한지, 무엇이 눌리고 있는지,

지금 이 몸이 상생으로 가고 있는지

상극에 갇혀 있는지는

숨의 방향과 깊이에서 먼저 보인다.


비슷한 경험은

아유르베다를 접했을 때도 있었다.

그곳에서도 의사는 아픈 곳부터 묻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잠은 어떤지, 소화는 어떤지,

그리고 숨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아유르베다 세가지 도사(바타, 피타, 카파)와 오원소(물, 불, 공기, 흙, 공간=에테르)

아유르베다는

몸을 세 가지 기본 성향으로 바라본다.

그것을 도샤(Dosha)라 부른다.

• 바타(Vata)는 공기+공간, 움직임의 원리로,

신경과 호흡, 순환처럼 빠르고 미세한 흐름을 맡는다.

• 피타(Pitta)는 불+물, 변환의 원리로,

소화와 대사, 체열처럼 태우고 바꾸는 힘을 대표한다.

• 카파(Kapha)는 물+흙, 구조와 안정의 원리로,

체력과 윤활, 면역처럼 붙잡고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세 가지를 도샤(Dosha)라 부르며,

질병은 어느 하나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균형이 깨질 때 생긴다고 보았다.


숨은 그 균형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자리였다.

숨이 빠르고 얕아지면 바타가 흔들리고,

숨이 뜨겁고 거칠어지면 피타가 치솟으며,

숨이 무겁고 답답해지면 카파가 정체되어 있었다.


“동양의학에서 숨은

몸과 마음이 만나는 가장 바깥의 경계였고,

가장 원초적인 진단 도구였다.”


다음 3회|숫자로 생명을 읽다

- 숫자 사이에 빠진 숨결 하나

이 숨이 숫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치게 되었는지를

서양의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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