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다는 말보다 먼저 막혔던 것
아픔은 병명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먼저 오는 것은 숨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숨이 자유롭지 않다는 감각입니다.
어느 날부터 숨이 짧아졌습니다.
숨을 쉬고 있는데도 공기가 부족한 느낌,
깊게 들이마시려 하면
오히려 가슴이 먼저 굳어 버리는 순간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컨디션이 조금 떨어졌다고,
요즘 유난히 예민해서 그렇다고
이유를 붙여가며 넘겼습니다.
하지만 몸은 이미 여러 차례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숨이 먼저 막혔고,
그다음에야 통증과 불안이 따라왔습니다.
저는 병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까지
그 신호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뿐입니다.
응급실의 시간은 이상합니다.
시계는 분명히 움직이는데
시간은 몸 안에서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누워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앉아 있으면 숨이 더 가빠집니다.
그곳에서 가장 또렷해지는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가 아니라
“지금 제가 숨을 쉬고 있는가”였습니다.
응급실에서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극도로 단순해집니다.
계획도, 후회도, 설명도 사라지고
들어오고 나가는 숨 하나만 남습니다.
숨이 이어지면 존재는 유지되고,
숨이 흐트러지면 모든 것이 불안해집니다.
병실로 옮겨진 뒤에는
시간의 결이 더 흐려집니다.
아침과 저녁의 경계가 사라지고
몸은 스스로의 리듬을 잃습니다.
그럴수록 숨은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기준점이 됩니다.
숨이 얕아지면 생각은 앞질러 달리고
마음은 쉽게 무너집니다.
반대로 숨이 조금이라도 깊어지면
몸은 비로소 주변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
창밖의 빛, 의미 없이 흘러가던 시간까지
다시 감각 속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알게 됩니다.
치유는 치료보다 앞선다는 것을 말입니다.
치료는 외부에서 옵니다.
약과 처치, 수치와 설명이 몸을 돕습니다.
그러나 치유는 내부에서 시작됩니다.
숨이 먼저 안정되어야
몸은 “지금은 살아도 괜찮다”고 판단합니다.
아픔의 시작은 병이 아니었습니다.
숨이 막히는 순간,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긴장했던 그때였습니다.
그리고 회복의 시작 역시
숨이 다시 자리를 찾는 순간에서 비롯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지금,
당신의 숨은 어떠하신가요.
깊게 들어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심히 참고 지나가고 계십니까.
괜찮습니다.
지금 이 문장을 읽고 계시는 사이
한 번만 천천히 들이마셔 주셔도 충분합니다.
숨이 돌아오는 그 순간,
몸은 이미 치유를 시작합니다.
치유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숨이 돌아오는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시작됩니다.
다음 2회|왜 숨을 먼저 묻는가
- 기는 보이지 않지만 흐른다
그리고 숨을 통해 어떻게
몸의 흐름과 치유의 방향을 읽어내는지
‘치유의 숨결’을 따라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