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 윈드(Second Wind)
소백산에서 만난 두 번째 바람
정말 오랜만에 소백산을 올랐다. 한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끄적거리며 지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분명한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래서 눈 덮인 소백산을 찾았다.
소백산은 제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제천시와 경상북도 영주시·봉화군에 걸쳐 있다. 주봉인 비로봉(1,434m)은 제천시에 속한다.
삼가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삼가산장, 삼가약수터를 지나 삼가휴게소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길에 남아 있는 앞선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은 매서워졌고, 운동을 멀리한 흔적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호흡은 가빠지고 폐가 터질 듯해 잠시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니 눈부신 소백산의 설경이 펼쳐져 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에너지바 하나로 숨을 고른 뒤 다시 발을 옮긴다. 그리고 어느덧 비로봉 정상. 정상에서 마주한 풍경은 뿌듯함과 함께 그동안의 안일함을 조용히 되돌아보게 한다. 이 감정은 쉽게 말로 옮기기 어렵다.
높은 산을 오르다 보면 숨쉬기조차 힘들고 기운이 바닥나는 순간이 온다. 이를 사점(死點, dead point)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지점을 견디고 넘어서는 순간, 고통은 서서히 사라진다. 이때 찾아오는 변화를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고 한다.
세컨드 윈드는 흔히 ‘두 번째 호흡’이라 번역된다. 운동 초기에는 혈액의 상당 부분이 두뇌와 내장기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운동을 지속하면 혈액이 점차 활동 근육과 심폐기관으로 재분배되면서 신체는 본격적인 운동 활성 상태에 들어간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초기의 호흡곤란이나 가슴 답답함은 신체가 새로운 부하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산소 부족으로 생성된 젖산은 혈류 증가와 산소 공급으로 점차 산화되고, 땀과 소변을 통해 배출된다. 긴장과 초조, 막연한 공포도 함께 가라앉는다. 그 순간 우리는 ‘세컨드 윈드가 분다’고 느낀다.
우리 뇌는 모르핀보다 최대 100배 강력한 진통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인성 모르핀, 즉 엔도르핀이다. 엔도르핀은 극심한 스트레스나 고통, 공포의 순간에 분비가 증가한다.
높은 산을 죽을힘을 다해 오를 때, 스카이다이빙처럼 극도의 공포를 마주할 때, 42.195km를 달리며 포기하고 싶은 지점을 넘길 때, 혹은 분만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엔도르핀은 분비된다. 그 극점을 지나면 고통은 둔화되고, 몸은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비상감과 황홀함을 경험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군대와 구직, 그리고 또 다른 군대 같은 조직생활의 반복이다. 보기 싫은 사람을 매일 마주하고, 원치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삶 속에서 수시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스포츠와 음악, 각종 동호회, 혹은 생업에서 잠시 벗어난 취미생활을 택하는 이유다. 이런 일탈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다시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느끼는 순간,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고 꿈꿔온 삶을 향해 나아가는 제2의 시간들. 나는 이 변화를 ‘인생의 세컨드 윈드’라고 부르고 싶다.
소백산을 오르며 잠시 스쳐간 두 번째 바람은, 앞으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살아가겠다는 긍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