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제도로 만들어진다

사법·의료 개혁이 필요한 이유

by 웅토닌

작년 우리 사회는 이른바

사법 대란과 의료 대란을 거치며,
그동안 막연하게 느껴졌던 기득권의 실체를
일상 속에서 직접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사법계와 의료계라는,
사회적 신뢰와 공공성을 기반으로 존립해 온
두 제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몇몇 개인의 일탈이나 판단 착오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선민의식과 이해집단 중심의 구조,
즉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가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법계의 구조적 모순

판사와 검사는 국가 권력의 핵심을 위임받은
대표적인 공적 직무입니다.


그들의 판단 하나는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의 질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현실의 제도는 이 중대한 직무를
공공의 책무라기보다 경력의 한 단계로 기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판·검사 경력을 거쳐 변호사로 전향할 수 있고,
퇴직 이후에는 대형 로펌으로 이동해 고액 수임을 하는 길이 제도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이 구조 자체가 불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공직 수행 중의 판단이 향후 사적 진로와 연결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작동하는 순간, 사법 정의는
의도하지 않게 왜곡될 위험을 안게 됩니다.


법은 사람 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법이 사람의 이해관계 아래 놓이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사법에 대한 신뢰는 반복해서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의료계의 문제는 윤리가 아니라 구조입니다

의료 역시 개인의 선의나 헌신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의사는 전문직이며, 동시에 강한 공공성을 요구받는 직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진료의 연속성과 필수의료에 대한 책임보다

수익성이 높은 진료 영역으로의 이동이
더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는 구조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고위험·고강도·저보상 구조에 놓인 산부인과와 흉부외과를 떠나, 전문의 자격은 유지한 채
비급여 중심의 성형·미용·비뇨기 진료로 이동하는 현상은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시장이 함께 만들어 낸 현실적인 결과입니다.


이것은 전문과 변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료의 중심축이 공공성에서 시장성으로
이동하도록 설계된 구조적 전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짚고 싶습니다.

이 현상은 의사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만든
제도의 문제입니다.


의료인의 선택의 자유를 부정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영역이
시장 논리 하나로 재편되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가에 대해 묻고 싶을 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전문성’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사법과 의료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무능하거나 부도덕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높은 전문성과
성실함을 갖춘 분들입니다.


문제는
그 개인들이 놓여 있는 구조입니다.


공적 권한이
사적 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고,
이를 제어할 제도적 안전장치는 부족하며,
외부의 비판을
개혁이 아닌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집단 문화가 존재합니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될 때,

개혁은 늘 “직업 탄압”이나

“전문성 침해”라는 말 앞에서

멈추게 됩니다.


개혁은 처벌이 아니라, 신뢰 회복입니다

사법·의료 개혁은
특정 집단을 무너뜨리기 위한 작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직업이 다시
사회적 존중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공직에서 사익으로 이동하는
회전문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전문직의 자유와
공공 책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집단의 권익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기준으로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인지가
핵심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사법과 의료는 계속해서
‘기득권의 상징’으로 소비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해 낸다면,
상황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정하게 작동하는 사법 시스템과

필수의료가 무너지지 않는 의료 시스템은
국민이 불평하는 대상이 아니라
국민이 자랑할 수 있는 국가의 자산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