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달 플랫폼의 고객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이 일은 매일같이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는 36살의 특별한 재능 없는 남자’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건 다름 아닌 회사다.
이곳에서 우리는 일회용 도구에 가깝다. 이력서 한 장 없어도 입사할 수 있는 낮은 진입 장벽만큼이나, 대체 가능성도 높다. 마치 언제든 바꿔 끼울 수 있는 부품처럼.
근로자의 인권을 이야기하기엔 눈치가 보인다. 입사하고, 그만두고, 다시 입사하고 또 그만두는… 다들 이 회사를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공간으로 여긴다. “곧 그만둘 텐데 뭘…” 따지고 바꾸기보다는 그냥 적응하고 체념하는 쪽이 속 편하다는 분위기다.
근무 중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보고해야 한다. 이립(而立)의 나이에 “엄마, 나 화장실 다녀올게요”라며 허락을 구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고객의 날카로운 언성과 업주의 불만에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사무실 안 관리자들의 감시와 닦달까지 감당해야 한다.
업무용 채팅 프로그램에는 시도 때도 없이 공지와 경고가 쏟아진다. 30초의 여유 시간도 없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고객 전화를 소화하고 있는데 언제 공지 내용까지 숙지하라는 말인가. 채찍을 휘두르며 노예를 부리던 백인들처럼 관리자들은 감시와 통제를 당연한 일인 양 실행한다. 직장 내에 CCTV는 없지만, 우리는 사실상 실시간 감시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객센터는 이제 ‘지옥센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채찍'이 하나 생겼는데 시간당 10콜을 받지 못하면 사유서를 써야 한다. 내일 목표 콜수, 실적 저조 사유를 반성문처럼 채워야 한다.
여기에 자신의 콜 녹취를 듣고 스스로 평가해서 관리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의미 없는 일도 부여된다. 이미 QA부서에서 개인 피드백을 주고 있지 않은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하기 싫으면 '닥치고 하루 40콜 받으라'는 의도가 분명하다.
참으로 황당한 기준이다. 시간당 6콜만 받아도 잘했다며 인센티브를 주던 회사가, 이제는 10콜을 넘기지 못하면 경고하겠다고 나선다. 같은 기준 안에서 당근과 채찍이 동시에 오간다. 분명히 말하지만 사유서는 근무 태만에 해당할 때 쓰는 거다.
상담사를 존중하지 않는 공간에서 고객에게 친절하라고 강요하는 것만큼 모순적인 일이 또 있을까. 감정노동을 강요당하는 상담사들의 현실은 점점 더 비인간적이 돼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고약한 시스템을 설계한 범인은 누구일까. 답은 명확하지 않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잘 적응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워온 플랫폼 본사의 전략일 수도 있다. ‘단가는 낮추고, 효율은 극대화하라.’ 그 논리대로라면, 그들은 매우 성공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게 아니라면, 을(乙)과 을이 서로를 갉아먹는 구조일 것이다. 원청의 압박에 시달리는 하청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더 아래를 누르고 쪼는 방식. 관리자는 상담사를 조이고, 상담사는 고객에게 짜증을 숨긴 채 웃는다.
‘이 시스템 속에서 나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시대에 취업의 문은 좁고 스펙은 넘쳐난다. 그 와중에 어릴 적 귀에 박히도록 들었던 한 문장이 불쑥 떠오른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 들어가야지.” 그 말이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규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