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뒤늦은) 프롤로그

1955.03.04-2005.03.28

by 박지각
아버지가 남긴 총 9권의 항해일지



1955년 3월 4일.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전쟁이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한 때였다.

사내아이 위로는 누나 둘, 형이 하나 있었다.


여섯 식구는 부산에서 포항으로, 포항에서 다시 동해로

전쟁을 피해 도망치듯 내려왔던 피난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사내아이는 어머니와 형제의 등에 업혀 자라났다.


사내아이는 머지않아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

묵호진동 산비탈은 사내아이가 기억하는 첫 집이었다.

그 후 사내아이 아래로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더 태어났다.


사내아이는 둘째 누나와 참 애틋했다.

둘째 누나는 지긋지긋한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큰돈을 벌어오겠다며 떠났다.

둘째 누나는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부고와 함께.


여섯 남매는 다섯 남매가 되었고, 사내아이는 넷째에서 셋째가 되었다.

다섯 남매 중 한가운데를 차지하게 된 사내아이는 고등학교 졸업보다 생계를 우선해야 했다.

입은 많았고, 동생들은 아직 어렸다.

철이 들기도 전에 사내아이는 청년이 되고 말았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집 앞이 항구라 어깨너머 배운 덕에 뱃일은 빠삭했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라면 해군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전역 후 청년은 해운회사에 취직해 화물선 기관실 일을 시작했다.

여전히 입은 많았고, 동생들은 철이 없었다.


1980년, 청년이 스물다섯이 되던 해였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그가 육지에서 나고 자란 이와 만났다.

밤바다 위의 오징어 배 불빛을 반딧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천진했던 그녀였다.


1982년, 두 사람 사이에 첫 딸이 태어났다. 청년은 아버지가 되었다.

딸이 자라나는 사이, 아버지는 아버지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아버지를 잃었다.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집 한 채를 마련했다.

작지만 매일 아침 따사로운 햇빛이 마당 안쪽으로 넘실거려 따뜻하고 아늑한 집이었다.


1987년, 아버지는 둘째 딸을 품에 안았다. 첫째 딸이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그 사이, 아버지의 여섯 남매 사이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1993년, 서른여덟 살이 된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에게 가족이란 더 이상 여섯 남매가 아니라 아내와 두 딸이었고 그들을 지켜야 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부지런히도 살았다.

두어 달에 한 번 집에 들렀고, 집에서도 편히 쉬지 못했다.

집을 비운 사이 고장 난 것들을 고쳐야 했고, 밀린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때로는 회사에서 생긴 갑작스러운 일로 그마저도 쉬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열심히 돈을 벌었고, 조금씩 집을 넓혀갔다.


두 딸의 키가 아버지만큼 자라났을 때,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은 아내와 두 딸 사이엔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다.

TV에서 암 환자가 나오면 즉각 채널을 돌릴 것. 서로의 앞에서 울지 않을 것.

아내와 두 딸에게 ‘남편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는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고,

그들은 어디에서도 올바르게 애도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아버지를 떠나고 1년 뒤, 그가 남긴 것들을 되돌아보았다.

필름 카메라 1대와 사진들, 오래된 전축, 그리고 10권 남짓한 항해일지가 있었다.

되돌아보면 아버지는 늘 무언가를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책을 읽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항해일지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책장을 덮어버렸다.

나보다 앞선 눈물 자국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항해일지엔 무슨 말인지 모를 언어 사이사이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남겨져 있었다.

앞서 읽은 누군가의 눈물자국에 번진 채.


그 후로 다시 또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남은 아내와 두 딸은 남편,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울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덮어뒀던 아버지의 항해일지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울어야 낫는다는 걸 이젠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아버지의 서른여덟부터 마흔여덟까지의 시간을 거슬러 가보려 한다.


우리의 애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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