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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ug 26. 2024

천국은 어디에

이李씨(이하 이): 오늘은 책표지를 먼저 소개했어. 같은 소설인데, 우리말 번역서가 시간차를 두고 두 종류가 있더라.

원제가 A Step from Heaven인데, '여기는 천국이 아니야'라는 직접적이고 부정적인 제목보다는 '천국에서 한 걸음'이 더 좋게 들리네.


이 전에 리뷰를 쓴 The House of Mango Street(망고스트리트), Rising Esperanza(에스페란자의 골짜기) 두 책이 멕시코 이민자 가족의 어린 딸들이 겪는 일들이라면, 이번 책은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가족의 이야기야.


소설의 화자는 영주, 네 살에 한국을 떠날 때 가족들은 '천국'을 어쩌면 '천국보다 더 좋은 곳'을 기대했던 가 봐. 영주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천국과도 같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영주의 가족은 거친 이민자 삶에 적응해야 했어.


영주의 이야기는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다 보니, 부모님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찾는 일, 집을 구하고 살림을 하는 일, 미국에 살지만 음식은 한국식을 포기 못하는 부부모님의 고집, 남동생의 출생, 동생은 남자이기 때문에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것에 대한 불만, 자신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모님과 생기는 문화적인 격차와 갈등, 부모님 사이의 불화 그리고 가족의 해체, 그러나 가족이 붙드는 희망을 말하지.


독자인 나는 영주가 지나가는 시간들이 쓰라리게 보이지만, 오히려 화자는 담담하고 건조하게 읊조리듯이 말한다는 느낌이었어. 마치 그 시간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감정은 다 거두고, 한발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과 가족을 관찰하는 느낌. 이미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안, 분노, 외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고 그 감정까지도 대상화할 수 있는 초연의 상태라고나 할까.


그런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 과거의 상처가 어땠는지 담담히 말하면서 흉터를 살며시 쓸어내리는 모습처럼 보여. 내가 뭘 해줄 수 있겠어? 내가 그 흉터를 매만지면서 우는 것보다도, 그저 가만히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지. 조금 더 나의 마음이 가 닿길 원하면, 그의 말이 다 끝나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


점선면(이하 점): 이 씨가 소설 속 영주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면, 영주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 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어학연수로 캐나다에서 살아보기도 했지만, 내가 태어난 자란 나라를 떠난다는 건 내 인생 계획에 한 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네. 나는 이 조그만 한국이라는 땅덩이 어디에선가 태어났으니 여기서 살고, 여기서 죽고 싶을 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우리나라 정국이 어지러울 때 아버지의 형제분들 중 여럿이 일본으로 건너가셨어. 아버지 형제 7남매 중, 고모 두 분과 형제분 세 분 이렇게 다섯이나. 고모들은 고모부들의 결정에 따라가신 거였고, 큰 고모가 먼저 일본에서 기반을 잡고 나서 남동생들을 불러들인 거였는데, 우리 아버지는 할머니할아버지와 제주에 남았지.


친지분들이 할머니할아버지를 뵈러 올 때, 일본 상품들을 자주 들고 왔고, 어린 조카들을 위해서도 일본 학용품이며 옷가지, 과자들을 자주 주셨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일본은 더 좋은 곳이니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을 정도로, 이 나라를 벗어나 다른 나라에 산다는 걸 바라본 적이 없었어.


야망이 적은 걸까? 모험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삶은 어느 곳에서나 힘들다는 나만의 이른 깨우침인건가?


이방인으로 이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고립과 단절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벼룩만도 못한 한 용기 때문인가?


그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길을 걸으면, 나와 비숫하게 생긴 사람들이 있고, 나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는 그런 일상적인 동질성을 떠나기가 싫어서.


그래서, 말도 글도 생김새도 문화도 곳으로 떠나 살기를 작정하는 분들의 결단과 실행이 놀라울 뿐이야. 나로서는 그래.


친척 중에 베트남 출신 여성과 결혼한 이가 있어. 지금까지 두 아들 낳고 착하고 건실하게 잘 살고 있어서 가족들에게 참 고마운 존재야.

이제 길거기리에서 심심치 않게 동남아 이주민들을 보게 돼. 외모가 다르기 때문에 눈에 띌 수밖에 없잖아.

우리 학교에는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학생들이 있는데, 외모는 비슷하지만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부모님들의 한국어도 들으면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우리 도시의 다른 지역에는 다문화 학생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고, 이미 학급에 서너 명씩 있는 학교도 있고.


공통점이 뭘까?

BETTER LIFE, 더 나은 삶을 원한다는 거 아닐까?

누군가는 그것을 위해서, 자기가 태어난 땅이 아니라, 더 많은 기회를 찾아서 타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거겠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다수의 해외이민거주 작가님들도 각자 인생의 도전이자 전환으로, 한국을 떠났을 테고요.


: 그 반대의 경우도 이 씨는 알고 있지 않나? 더 좋은 조건의 삶을 포기하고, 더 어렵고 궁핍하며 위험한 삶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놓은 사람들 말이야.


: 아, 그렇지! 세계무대에 존재감 없는 작은 나라, 조선을 찾아온 선교사님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헌신한 그분들은 모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내려놓았지.


수요예배 때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선교보고를 하시는데, 이렇게 말씀하셔.


한국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올 때마다 발전한다, 내가 사는 선교지는 한국에 비해서 부족한 게 많다, 하지만 그곳에서 행복하다고.

아마 자신들의 BETTER LIFE를 내려놓고 BETTER KINGDOM 좋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분들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해.


언제나 꿈이 현실이 될 수는 없기에, 고난 속에서 다른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

소설 속 영주의 아빠는 결국 혼자서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러니하지?

분명 가족들을 이끌고 미국행으로 가능하게 했던 건, 가장의 결정이었을 텐데.

새로운 문화와 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변하고 수용해야 하는 부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관습과 고집을 고수하면서 아빠가 미국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이 커져갔던 탓이야.

씁쓸한 귀환자.....


이게 작가의 자전소설이라면 말이야, 후일에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었을까? 궁금해.

작가가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났더라고. 소설이 끝나는 시점 이후 20대부터 현재 50대 초반까지 한국에서보다 미국땅에서 많은 세월을 보낸 이민 1.5세대인데. 미국이란 낯선 땅에 가족들을 불러가고, 또 가족들을 두고 떠난 아버지와의 관계는 끝내, 먹고사는 걱정이 없어지고 삶이 편해지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숙제 같겠지.


영주에게 미국이 천국이 아닌 이유는 가난 자체가 아니라,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으로 붙들어매지 못하고 해체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해.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행복의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해.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지만, 지천에 있는 세 잎 클로버가 행복을 뜻한다지.


오늘 바로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소중하게 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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