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규민 Kyumin Ko Jan 08. 2023

기계의 부산물로서의 인간

인간으로부터 기계까지, 주체의 변화

기계와 건축, Machine and Architecture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산업혁명 전의 시대에서는 기계 Machine 이란 개념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기계 Machine 보다는 농기구나 직조기계 같은 소규모 도구, Tool의 개념이 일상에서는 통용하였으며, 인간의 명령에 따라 고차원적인 원리로서 작동하는 기계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는 기술의 혁신으로 인하여 농업 개량을 위한 운동과 경공업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는 전기화학과 중화학 공업으로의 2차 산업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2차 산업혁명은 석탄, 제조업, 섬유 등에 머물러 있던 1차 산업혁명과 달리 우리에게 내연기관과 석유, 전기 등의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의 기회를 안겨 주었다.


 그 시대의 기계란, 동력을 사용하여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를 이르는 말로서 그 시대에는 이를 이용하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기계는 인간을 도와주는 소모품으로 작용해왔다. 산업혁명 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증기기관차와 자동차와 같은 기계들은 인간의 명령이나 인간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의존적 관계에 있었다.



Le Corbusier / Villa Savoye, 1931 ⓒ ArchEyes



 이러한 기계의 개념은 건축까지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1923년 발표한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의 "집은 인간이 살기 위한 기계다. A house is a machien for living in" 이라는 말에 빗대어 보면, 기계는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속성에 근거해 인간의 부속품으로서 편의를 제공하는 관점이 이미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Plug-in City - Peter Cook, 1963  / Walking City - Archigram



 1960년대의 아키그램 Archigram 이라는 건축가 집단의 결과물로서 일원이였던 피터 쿡 Peter Cook 의 Plug-in City와 론 헤론 Ron Heron 의 Walking City의 드로잉들에서도 나타난다. 1963년 피터 쿡이 표현하였던 Plug-in City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일정한 그리드 Grid 체계 안에서 건물을 부속품으로 생각하며 하나의 모듈식 구조로서 관입과 해체가 가능하도록 작용시켰다. 이러한 캡슐형태의 모듈식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면서 주거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오른쪽의 론 헤론 Ron Heron 의 Walking City는 고정되어 있고 정적인 건물의 특성에 기계의 동력과 움직임을 결합한 계획안이다. 기계의 팔과 다리같은 부품들을 건물 인프라에 부착시켜 건물과 기계의 기능을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사고의 부산물로서 대지의 장소성은 사라지고 건물은 필요에 의해서 이동하거나 정박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고는 뒤이어 Renzo Piano와 Richard Rogers가 설계한 퐁피두 센터 Pompidou Center 의 실질적인 건축으로까지 이어졌으며, 오늘날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여의도 '더 현대'도 마찬가지의 맥락의 흐름 안에서 존재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르 꼬르뷔지에의 시대부터 100여년이 지난 시점인 지금, 기계는 과연 인간의 부속품으로서만 작용하고 있는가?





인공지능 소피아 Sphia ⓒ Elle, CNBC


기계로의 주체성 획득, 인공지능 소피아


 인공지능 소피아(Sophia)는 홍콩 소재의 핸슨 로보틱스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인간의 몸과 비슷한 얼굴의 형상을 지닌 로봇이다. 이 인공지능은 시간이 지나면 지능이 점차적으로 높아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감정 중 연민, 창의성, 공감 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눈에 장착한 카메라로 외부를 보아 개인을 인식하며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추적하고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소피아는 내장된 Ai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인간과 고차원적인 대화까지 가능하고 기본적으로 구글의 Alphabet을 이용해 영어를 구사하며 대화 중 정보 교환 뿐만 아닌 농담 등 위트 있는 대화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소피아에게 주목할 점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 로봇으로서 시민권을 부여받았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소피아가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인간이 인간이 아닌 다른 객체에게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이라는 권한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에 기계를 인간의 발 아래에 두던 위계를 현재에서 동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인간 자기자신이 인정한 셈이다.





Semiramis Project ⓒ Gramazio Kohler Research, ETH Zurich


기계와의 협업과정, Semiramis Project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는 만큼 기계는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취리히에 있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 대학, ETH Zurisch University는 파비오 그라마치오 Fabio Gramazio와 마티아스 콜러 Matthias Kohler가 이끄는 연구팀은 Robotics Architecture 라고 하는 기계와의 협업을 통하여 건축물을 생산하고 있는 연구실에서 작업물을 만들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축물 세미라미스 Semiramis 프로젝트인데, 아시리아의 여성 통치자의 이름에서 가져온 프로젝트이다. 세미라미스 프로젝트는 설계과정부터 시공까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설계되었으며, 지어질 당시 네 대의 로봇이 투입되어 졌다. 구조물은 기하학적으로 복잡한 5개의 목재 파드로 구성되며, 각 파드에는 나무와 여러 식물들을 심는다. 8개의 가느다란 강철 기둥이 떠받치는 건물의 높이는 22.5m에 달한다.


이 프로젝트의 초기의 아이디어는 다양한 높이의 불규칙한 모양의 플랫폼 Platform 이 위로 쌓아올려져 가는 수직정원에서 시작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비와 햇빛 등 여러가지 자연적인 혜택을 균등하게 받으며 관개도 가능한 형태로 제작되어야 했다. 따라서 이러한 변수들과 실제 시공을 위하여 목재 건축 기업의 대표주자인 팀바텍 Timbatec, 그리고 Muller Illien Landscape Architects는 연구진들과 세미라미스 설계에 같이 참여하였으며 스위스 데이터 사이언스 센터 Swiss Data Science Center와 공동으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하였다. 


총 표면적이 220㎡이면서 빗물 폐색 Rain Occulison 정도가 50%인 대안 / Construction ⓒ Gramazio & Kohler Research


 알고리즘에 변수로 작용되는 옵션에는 여러 가지 플랫폼의 형태와 플랫폼의 배치 등이였고, 인공지능 Ai는 이들 간의 차이가 플랫폼 사이를 오가는 빗물 영향, 관개 irrigation와 같은 대상 변수들에 미치는 영향까지 분석하였다. 결과적으로 머신러닝 알고리즘, Ai는 설계단계에서 입력한 조건에 맞게 무수한 디자인 대안 Design Alternative들과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디자인을 보여주었으며 여기서 인간의 역할은 알고리즘을 수정하거나 디자인을 취사선택하여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디자인 후 시공 과정에서는 인간이 로봇과 보조를 맞춰 특수 레진으로 패널을 붙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여기서의 인공지능은 디자인 변경 사항에 맞춰 전체 기하학적 구조를 조정하되, 효율과 하중지지를 고려해 항상 최선의 구성을 도출해 낸다. 또한 기존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뒤집어 프로젝트를 위한 가능한 모든 범위의 디자인을 검토한다. 검토된 디자인들의 명령을 받은 로봇들은 패널을 집어 모델링 상에 있는 x,y,z 값들 좌표로 정확한 위치에 맞추는 등 컴퓨터 설계안을 바로 작업에 옮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제자리에 놓인 패널들을 특수 캐스팅 레진을 사용해 붙이는 작업을 통하여 패널과 패널 사이사이를 채우는 작업을 한다.




기계의 부산물로서의 인간


 과거에 '인간의 부산물로서 기계'는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지원수단 Support으로 작용했으며, 건축의 영역에서 때로는 건물에 부착되어 '움직인다'라거나 '작동한다'라는 개념으로서만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러한 인간과 기계의 위계질서는 인공지능 소피아가 시민권을 부여받기 시작하면서 수직적인 체계에서 수평적인 체계로 변화하였다. 심지어는 세미라미스 프로젝트의 설계에서 건축가는 인공지능과 컴퓨터, 그리고 기계인 로봇이 없으면 고차원적인 설계와 시공상의 오차범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게 되었다.


설계과정에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변수들의 파악이 있을 때, 로봇은 인간보다 더 많은 디자인 안을 뽑아낼 수 있으며 도리어 인간에게 디자인 영감을 줄 수 있다. 현재 Ai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취향이라는 항목을 제외하고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데이터들로 Alt 대안들을 비교할 수 있으며 계속되는 실험으로서 최적화 된 안까지 도출이 가능하다. 


현재 건축 설계 및 전반적인 분야에서 공헌하는 인간과 기계 중 기계의 비율이 늘어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은 지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기계가 디자인 분야의 70-80%의 대 다수의 분야를 점유하며 인간은 기계를 서포트 해주는 위치에 있거나 기계의 전체적인 알고리즘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기계의 부산물로서의 인간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950년대 Mac Pro의 디자인이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