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초록색 눈' 이청해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소설에서 다루지 않았던 '황옥란'에 대하여 개인적 상상(허구)에 근거하여 황옥란 인물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는 황옥란 입니다.
"부모님이 한번 식사를 같이 했으면 해"
언제 한번은 얼굴을 뵐 날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소식을 전달 받게 될지 예상을 하지 못했다. 예상 못한 질문에 나는 잠시 답변을 미루고 마주 바라보는 눈길을 피해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천장에 달려 있는 3개 전등 중 하나의 전등에 불이 들어 오지 않는 걸 보았다. 높은 위치에 있는 전등은 언제 청소를 하였는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주먹 보다 작은 생명체로서 주변의 어두운 공간에서 나는 아픔을 느꼈다. 그 아픔은 외부로부터 물리적 자극을 받아 생겨나는 아픔과 다른 어떤 때는 심장을 쿡 찌르게 했다. 나의 발길질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심했다.
나를 잉태한 엄마는 내가 자신의 배를 다른 자녀들과 달리 심하게 발길질을 했다고 늘 나에게 말했다. 나의 탄생은 모두에게 축하와 달리 불안, 걱정 그리고 분노였다. 대형 쓰나미 같은 존재처럼 단란했던 가정에 풍파를 일으켰다. 나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생명체였다. 그래도 엄마는 나에게 옥 같고 난초 같으라고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팔자가 귀하고 우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옥란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5살 때, 엄마의 손에 이끌려 어느 집에 버려 놓고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빠른 발걸음질 하며 떠났다. 나는 그곳이 어떤 장소인지 알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낯선 사람들은 나를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여겼다. 그 특별함은 성장하면서 차별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엄마 없잔아"
소꿉놀이 도중 심술이 난 친구가 말했다,
"아니야. 나도 엄마가 있어" 하며 친구를 밀치자 소꿉놀이 장난감이 흐트러지고 땅바닥에 넘어진 친구는 울었다. 나도 따라 함께 울었다.
친구가 울자 친구 엄마가 데리고 갔다, 나는 아주 크게 울었다, 나도 엄마가 데리러 올 거라 생각하고 울었다. 시간이 지나도 누구도 나의 울음을 달래주며 데리고 가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울음을 멈추었다.
미약한 기억 속에 나에게 작은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엄마와 달리 젊었고 이뼜다. 작은엄마가 잡아준 손의 온기는 내가 처음으로 느꼈던 따뜻함이었다. 나는 작은엄마의 손을 자꾸 붙잡았다. 그리고 마당을 뛰어 다니며 마당의 꽃도 구경했다.
그러나 즐거웠던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하고 나는 차별 속에 혼자가 되었다. 작은엄마의 존재가 기억 속에서 흐려졌고 떠오르지 않았다.
철이 들어 엄마는 다방에서 일을 할 때 자신보다 5살 연하며 지방인 전주에 내려와 지방 공무원을 하며 고시를 준비하는 젊은 남자의 성욕을 달래 주는 상대로 낙점이 되었던 것이었다. 과부인 엄마는 그를 사랑 했는지 모르지만 고시를 준비하는 젊은 연하의 남자에게 껌 딱지 같은 존재 이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붙었던 엄마이었다.
그녀는 고시 합격한 5살 연하의 남자와 함께 여생을 살아 살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엄마에게는 다른 아이들이 있었다. 나와 씨가 다른 아이들이다. 소문에는 그들의 씨도 다르다는 동네 사람들 이야기이다.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하지만 아직 어린 나에게 엄마의 넋두리는 기억이 난다. "너는 혹이야"
답변을 하지 못하는 나에게 형준은 부모님이 만나기를 원한다며 나의 답변을 재차 강요했다.
"너무 빠르지 않아.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대..."
나의 미지근한 답변에 형준은 의아하게 '왜?'라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준의 눈은 따뜻하다.
군 복무 후, 복학한 형준과 나는 같은 수업을 들었다. 학생회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형준이 나를 향해 형식상으로 손을 들어 인사를 건내며 웃어 보였다.
그의 평범한 동작의 여운이 오래 남았었다. 어쩌면 그날 이후 운명적으로 형준이 나의 마음에 자리를 채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팔을 걷어 올린 하얀색 셔츠는 몇번 접었는지 팔꿈치에 걸려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단정한 습관이라고 생각했는데, 군인들은 군복 상의 팔을 몇 번 접어 팔뚝에 고정되게 하여 입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형준을 알고 몇 년이 걸렸다.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데 그가 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다.
그는 선후배들의 의심스러운 질문을 받기도 했다.
"군대 정말 다녀왔어?' .
형준은 그저 웃어 넘기며 대답 하지 않는다. 나는 관심이 없다.
교사 임용시험을 끝내고 나는 시골 중학교 부임을 기다리고 있다. 형준은 나 보다 3살이 많은 30살이다. 작은엄마의 따뜻한 온기 이후 처음으로 형준은 나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 소중한 사람이다. 그는 조급하지 않지만 적극적인 성향이다. 나는 그에 비하여 소극적이다.
마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나의 이야기에 형준은 나에게 너를 이해 해 주실 분들이라며 마주 보고 앉은 위치에서 내 옆으로 다가 앉아 손을 감싼다. 그의 따뜻한 체온이 좋다. 늘 그는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막막했던 시절, 늘 혼자라고 생각하며 보낸 27년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기라도 하듯 그는 나에게 왔다. 마치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들듯,
나는 작은엄마의 손은 엄마의 손과 달리 솜사탕 같아 힘을 주어 손을 잡지 않는다. 힘을 주어 꽉 잡으면 솜사탕의 모양이 망가질까 나는 작은엄마 손을 잡을 때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오래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느끼고 싶어 했다. 형준은 나에게 작은엄마의 손 같은 존재이다.
"형준 오빠에게 옛 애인이 있었다는 이야기 아니"
나의 단짝 미경이는 누구에게 소문을 들었는지 나를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몰라. 누구"
그러자 미경이는 짧게 "경희 선배".
그녀는 우리 보다 4년 선배이다. 나는 그녀를 만나 본 적이 없어 얼굴이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빛나는 미모를 자랑하는 학교 남학생의 꽃이었다.
형준은 뭇 남학생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공공의 적이었던 것이다.
중학생 때, 나는 친 아버지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작은엄마 하며 불렀던 남편이었다. 오래된 나의 기억은 너무 어려 얼굴 생김새가 떠 오르지 않는다.
처음 호적을 발급 받고 나는 혼동과 놀라움에 잠시 정신을 놓았었다. 심장이 요동치며 손이 떨렸다, 아니 몸이 굳었다는 표현이 맞다. 나의 몸은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이 가빠졌다.
나의 아버지 이름이 황인걸 그리고 2남 1녀의 동생들과 엄마. 늘 혼자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낯선 이름들의 가족이 존재 하고 있었다.
'누구인가 이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