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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우유 Mar 15. 2021

[에세이-비혼잡설] 당신은 결혼하기엔 아까운 사람이다.

 ‘도쿄 여자 도감(東京女子圖鑑,2006)’ 은 한 여성의 20대부터 40대까지의 삶을 통해 일과 사랑, 결혼과 이혼에 대해 다룬 여성 중심 서사의 드라마다. 아키타(秋田) 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도시의 삶을 동경해 온 주인공 '아야'가 도쿄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겪게되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세련된 영상미를 겸비한,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인 작품이다.

  극의 중심은 주로 아야의 ‘연애’에 맞춰져 있다. 가난한 남자친구를 버리고 선택한 부자집 도련님에게 배신당하는 20대의 연애를 시작으로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해 만난 적당한 남자와 가정을 꾸리지만 취향과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하게 되는 30대를 거쳐, 휴식같은 ‘남사친’과의 우정같은 40대 연애를 마지막으로 ‘아야’의 성장통은 끝난다.


  개인적으론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주인공이 명품 브랜드 매니저로 성공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다루지 않은점이 다소 아쉬웠지만, 대부분의 일본 드라마 여주인공과는 달리 '아야'가 진정한 행복을 위해 능동적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이 제법 인상적이었다.(실제 주인공 역할을 맡은 미즈가와 아사미(Mizukawa Asami) 역시 여느 일본 여배우와는 달리 씩씩하고 거침없이 자기 할 말 다하는 캐릭터로, 다수의 여성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 주변에는 수많은 ‘아야'와 같은 여성들이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학창 시절에 치열하게 노력해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확보했고, 여가 시간에 몰입할 한 두 개의 취미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독서와 문화생활을 통해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을 갖춘 멋쟁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존재만으로도 자체 발광이 가능한 여성들이 단지 결혼을 못 했다며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런 자괴감은 자생적인 감정이라기 보단 한국 사회 특유의 오지랖이 ‘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을 공격해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아무리 요즘 비혼이 많아졌다고 해도 남자들에 비해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여전히 주변으로부터 달갑지 않은 참견과 잔소리를 들어야 할 때가 많다. 능력 있는 비혼 여성이 본인 명의의 집을 갖고 있어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수 있는 자가용이 있어도 남의 인생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삶은 ‘남자’가 없어 미완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너에게 ‘좋은 남자’를 만날 것이라는, 부탁하지도 않은 덕담(?)도 잊지 않는다. (남자 친구 필요 없다고. 혼자가 더 좋다고요.)  ‘도쿄 여자 도감’에서도 맞선에 번번이 실패하는 주인공에게 결혼 정보회사 직원은 ‘머릿결을 관리하고 상냥한 말투로 이야기 하며, 네일 컬러를 남자들이 좋아하는 모노톤으로 바꿔보라’며 훈수를 두는 장면이 등장한다. 미혼이든 비혼이든 남자 없는 인생을 사는 여자들의 삶은 이렇듯 주변인의 평가로부터 늘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적용되는 ‘ 표준 시간표’가 있어 기준이 조금이라도 비껴간 삶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당신도 나와 똑같이 살아 보라’며 타인의 인생에 무례하게 개입하여 독신의 평온함을 흔들때가 많다. 비혼으로 살면서 가장 황당한 것이 “왜 결혼 안 했어요?”라는 질문을 받는건데,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결혼한 사람은 없으니 모든 인생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가 디폴트인 것이 맞다. 가끔 저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그럼 XX 씨는 왜 결혼했어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당황하면서 속 시원한 답을 하지 못하는데, 결혼 여부에 대해 물어보는 질문이 불편한 분들은 이 방법을 반드시 써보길 바란다.


  플라톤(Platon)의 ‘향연(Symposium)’ 을 보면 제우스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에로스가 완전체를 이루기 위해 반쪽을 찾는 대목이 나온다. 흔히 말하는 ‘나의 반쪽’이란 표현이 여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말 그대로 ‘고대 그리스에서나 통할 법한’ 구시대적 발상이 아닐까. 현대 사회는 문명의 이기와 과학기술의 발달, 다채로운 놀이 문화 덕분에 누구나 혼자서도 완전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가능한데 굳이 하나의 온전한 삶을 반으로 후려치기 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얼마전 화제가 됐던 비혼모 연예인 사유리의 사례에서도 보듯, 결혼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정자를 기증받아 남자 없이도 아기를 가질 수 있다. 비(미) 혼 들이여, 부디 자신의 삶을 미완성으로 치부하지 말자. 당신의 인생은 반으로 갈라진 에로스의 그것과는 달리 혼자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빛나며, 결혼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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