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적이 있었다. 대학선배가 소개해준 시인의 시집을 반복해서 읽으며 시가 무엇인지 고민했던 때. 그 시인은 하필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었다. 나는 가난한 유년시절과 엄마, 사랑, 그리고 산업화로 인해 사라진 것에 관한 그의 시들을 읽었다. 그 기억은 추억이 되어 아련하다. 누군가 그랬다. 기억은 잊혀질 수도 있지만 추억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그의 시는 추억이기에 아직도 그의 시를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곤 했다.
그 시인의 흔적을 혼자 찾아갔다. 광명역에서 내려 버스 두 코스만 가면 있는 곳. 길가에 있어서 찾기도 쉬웠다. 시인을 안지 이십 년이 넘었기에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조촐하고 담백한 시인의 집 입구에서시인은 웃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빈집이라는 시가 시인의 사진 옆에 적혀 있었다. 시인의 시로 가득한 집은 더이상 비어있지 않은데 말이다.
문학관 바깥의 풍경.
여러겹의 서랍들이 인상적이었다. 벽에는 시인이 쓴 시의 제목들이 흩어져 있고 시인의 이력들이 적혀 있었다.
1960년생. 살아있다면 올해 65살. 시인은 하늘에서도 못다 쓴 시들을 쓰고 있을까?
시인이 쓴 시 제목들이 문학관을 안내하기 위해 마중나온 것 같았다.
시인의 만년필.
1주기 추모 산문집<짧은 여행의 기록>
5주기 추모 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시인의 카세트테이프.
시인이 유년시절부터 쓴 탁상시계. 시인의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가난한 아버지에 대한 시.
시인은 '나는 한동안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고 했다. 사람과 삶에 대한 그의 시들이 떠올랐다.
성적표와 신체검사표, 임명장, 시인이 보낸 엽서.일상 속 시인의 흔적들.
나는 이 시를 좋아한다. 내 유년의 윗목이라는 구절이 특히 좋다. 그의유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것을 윗목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탁월함이 존경스럽다.
시인의 시들이 벽속의 풍경에도, 발걸음이 머무는 바닥에도 적혀있었다.
방안에서 창문 밖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시인은 방안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도시 저편으로 사라지는 해들을 무수히 보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시인의 시를 실컷 읽으며 시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시인의 시를 따라 적으며 시가 전해주는 감동을 한번더 느꼈다.
다른 시인들이 낭송해주는 시인의 시를 듣기도 했다. 또 지금은 반백이 훌쩍 넘은, 대학시절 문우들이 시인을 추억하는 영상도 보았다. 그들이 추억하는 기형도 시인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와 그 시에 대한 시인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해놓았다. 시와 시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했다.
시인의 책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길 건너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아쉬움에 한번더 돌아보았다. 겉으로는 소박해보이지만 문학관 안에는 시인의 시들이 깊은 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학관에서 시를 읽은 덕분에 하루는 또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