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히틀러에 의해 자살당하다
본명은 에르빈 요하네스 오이겐 롬멜. 롬멜은 1941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이끌어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자타로부터 '사막의 여우'라는 별칭을 받은 독일의 명장이다.
2차대전 후반기에 이른 1944년 봄, 전 육군 참모총장 루트비히 베크 육군 상급대장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결성된 히틀러 반대파에 가담한 롬멜의 친구 몇 명이 그에게 접근하여 히틀러 축출된 후 국가 원수직을 맡아달라 권하였고, 이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히틀러 암살에 공조를 하지 않았는데 암살 공모를 롬멜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롬멜은 히틀러가 자타의적으로 원수직에서 축출된다면 국가원수직에 오를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지 히틀러 암살에 동의를 했다고는 볼 수 없는 부분이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이 터지고 만다. 독일군 장교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총통 히틀러 암살을 하기 위해 회의실에 폭탄이든 가방을 놓고 폭발시켰는데, 히틀러는 가벼운 경상만 입은 채로 살았고, 쿠테타를 일으켰던 장교들 및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여 대규모 숙청을 한다.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은 실패로 끝나면서 재판과 조사과정에서 '롬멜이 히틀러 암살에 가담한 음모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도 역시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에 연루된다.
1944년 10월 14일 토요일 12시경, 사복 차림으로 입은 12명의 게슈타포 요원들이 '암살 기도 계획에 공모한 죄’로 롬멜에게 자살할 것을 권유하였다. 사건 연루의혹을 국민들에게 밝히지 않고, 조용히 죽는 대신,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장을 치러준다는 조건에서였다. 롬멜은 그들을 따라가 검은색 메르세데스를 타고 그의 집에서 약 500M 가량 떨어진 곳으로 간 뒤 차량 안에서 청산가리가 든 독배를 마셔 음독자살로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
히틀러가 이렇게 권유한 것은 국민적 영웅인 롬멜이 암살미수사건에 관련되어 처형당하게 되면 국민적 반감이 일어날까 그의 가족의 안전 대신에 자살을 택하게 한 것이었다. 자살 후 롬멜은 '서부전선 근무중 입은 부상으로 인한 심장마비사'로 처리되었고, 국장으로 치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