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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사건] 1996년 10월 23일

김구 암살범 안두희, 박기서에게 맞아죽다

by 나그네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정의봉으로 때려 죽인 박기서

1996년 10월 23일 경기 부천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던 박기서는 백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를 처단하기로 결심한 후 부천시장의 그릇가게에서 홍두깨 비슷한 40cm 크기의 몽둥이를 4천원 주고 사서 오전 11시 30분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에 있는 안두희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간다. 홍두깨에 ‘정의봉(正義棒)’이라고 쓴 채 안두희 부인을 묶고 안두희에게 장난감 권총을 겨누며 두손을 묶고는 정의봉으로 사정없이 내려쳐 때려 죽였다.

03.jpg 안두희 살해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 책

박기서는 안두희가 숨진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신곡본동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뒤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범행동기에 대해 자신은 학창시절부터 김구를 존경해 왔고 95년 초 백범일지를 읽은 뒤 백범의 유지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권중희가 쓴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한 '의로운 일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라는 진술도 하였다.


범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사회 각계 인사들이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처단 박기서 의사 석방 대책위원회' 를 조직하여 9,200명이 서명한 탄원서를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하는 등 구명 운동을 펼쳤다. 시민들은 그의 자택에 격려금과 위로 편지들을 보내기도 했다.


1997년 3월 검찰은 징역 8년을 구형하였으며, 4월 인천지법은 정황을 참작하여 살인죄 최소형량인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형량이 감형되었고 1997년 11월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되었다. 재판부는 '박씨의 범행동기는 주관적으로는 정당성을 가지나 법질서 전체 관점에서는 용인될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라고 형량 확정의 취지를 밝혔다. 박기서는 1998년 3월 13일 정부의 대사면 때 풀려났고 현재는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다.

05.jpg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김구 선생. 안두희는 배후를 밝히지 않은채 사망하여 끝내 알 수 없게 되었다

1996년 당시의 필자는 ‘김구’ 암살범을 국가가 살려두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승만을 위시로한 국가 위정자들의 어떠한 음모라고 여겨서 그의 행동을 지지하였다. ‘국가가 하지 못하면 개인이 단죄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그러나, 현재의 필자는 국가 법치질서적 차원에서 개인의 단죄는 반대하는 편이다. 일부 다른 이들처럼 암살배후를 알아냈어야 한다라고 하는데 안두희가 맞아죽지 않았더라도 그는 죽을때까지 그 배후는 무덤까지 가지고 갔을 것으로 여기는 바이다. 다만, 그런 그를 국가가 단죄하거나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점은 국가 법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문제인 것이겠지. 그렇다고, 국민 개개인이 각자 자기 방식대로 단죄를 한다면 그 사회는 무법사회나 다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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