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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오늘사건] 1919년 1월 18일

1차 대전 종전을 위한 파리강화회담이 열리다

by 나그네

파리 강화회담 또는 베르사유 평화회담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이 패배한 동맹국에 관련하여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회담이었다. 32개국에서 온 정치가들과 민족주의 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국제연맹 창립과 같은 중요 결정을 비롯하여 패배한 5개국과의 조약 체결,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 독일 제국의 해외 영토를 영국과 프랑스가 위임통치하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수립, 독일에 대한 보복, 그리고 민족경계를 반영한 국경 재수립 등이 이 회담에서 논의되었다.


주요 결과는 독일과의 베르사유 조약 체결이었다. 조약의 제231조에 따르면 독일과 그 동맹국의 공격성이 전쟁에 대한 죄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시야는 독일에게 굴욕감을 주고, 독일에 대한 광범위한 보복조치에 대한 기반이 되었다. 프랑스 제3공화국, 영국,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미국이 회담을 통제했다.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이탈리아 총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오를란도가 회의를 주도했다. 이들은 비공식적으로 145회 이상 만나 모든 주요 결정을 내렸고, 이후 다른 사람들이 이를 승인했다. 회담은 1919년 1월 18일에 개최되었다.

이 회담에는 김규식이 참석하였으며, 우드로 윌슨은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였고, 이 여파로 일제강점기에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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