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의 아버지, 멘델레에프 원자로 돌아가다
멘델레예프는 시베리아 서쪽에 있는 토볼스크(Tobolsk)인근 Verkhnie Aremzyani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에 그의 선생님이었던 아버지 이반 파블로비치 멘델레예프(Ivan Pavlovich Mendeleev)가 시력을 상실하여 그의 어머니 마리아 드미트리브나(Maria Dmitrievna Mendeleeva)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다.
1847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유리공장이 화재로 파괴되는 등 일련의 시련을 겪는다. 멘델레예프가 15세이던 1849년 그의 어머니는 멘델레예프에게 고등교육을 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남은 두 자녀를 데리고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건너가 정착했다.
멘델레예프는 모스크바에 있는 대학에 지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곧 그의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죽은 남편 친구의 도움을 받아 Main Pedagogical Institute에 들어가게 된다. 그가 이 기관에 들어간지 10주가 안되어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2년 후 그는 결핵진단과 함께 단지 수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1869년 3월 6일, 러시아화학회에서 그는 주기율표에 관한 자신의 논문을 처음으로 공식 발표했다. 그는 원소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나열하여 발견되지 않은 원소의 성질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실제로 멘델레예프가 예측한 원소들의 성질과 실제 원소의 성질이 맞아떨어진 사례가 몇 개 존재한다. 주기율표 101번째 원소는 그의 이름을 따 멘델레븀이라 불린다.
멘델레예프는 1906년 노벨 화학상 수상 후보에 올랐지만 그 상은 프랑스의 무아상이 수상했고 멘델레예프는 끝내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채 1907년 생을 마감했다.
발견되지 않은 원소의 성질까지 예측하여 만든 주기율표로 인해서 화학은 독자적 학문으로 독립하기에 이르고, 이로인해 멘델레에프는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다.
화학의 아버지 멘델레에프가 원자로 돌아간 날이 1907년 1월 20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