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독립신문을 발간하다
1895년 조선으로 귀국한 서재필은 조선에도 신문을 발행하여 국민을 계몽할 것을 계획한다. 유길준, 박정양 등은 서재필이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를 적극 지지하고 고종에게 신문 발간을 건의하여 허락받는다.
서재필은 귀국 직후 시도했던 신문 간행이 일본에 의해 좌절될 뻔했을 때 그를 위해 성심을 다해 뛰어다닌 이가 윤치호였다. 하지만,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에 도움을 받은 고종이 러시아 사신단으로 윤치호를 보내는 바람에 돕지 못했다. 서재필은 박영효, 박정양 등을 찾아가 신문 개설에 필요한 자금을 내줄 것을 호소하게 된다.
결국 1895년 봄, 박정양 내각은 서재필에게 신문 창립 비용으로 국고에서 3천원을 지원해 주었고, 별도의 정착 자금으로 1400원 등 4400원을 주었으며, 월 300원씩 10년간 중추원 고문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하고 이에 서재필은 수락을 하게 된다.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은 순한글과 영어로 인쇄, 발간되었다. 창간 당시 국배판(菊倍版)면으로 구성되었고 3면은 한글, 1면은 영어로 표기했다. 본문은 순한글 세로쓰기로 되어 있고, 논설과 광고, 국내외 소식 보도면으로 구성되었다. 한글판은 서재필과 주시경이 편집을 하였고, 영문판은 헐버트가 사실상의 편집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