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바로크 양식으로 된 교회음악에는 모테트나 미사곡 대신 성악과 기압 합주의 다양한 편성을 포괄한 의미로 '콘체르토'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곡을 '종교 협주곡'이라 불렀는데, 독창에 통주저음만 붙은 것부터 몇 개의 합창단을 포함하는 대규모 협주곡도 있었다. 음악가 로도비코 비아다나(Lodovico Viadana)는 1602년 <백개의 교회 협주곡>(Cento concerti ecclesiastici)라는 협주곡 작품집을 출판하였는데 그는 종교음악에 '협주곡'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최초로 채택한 작곡가로 꼽힌다.
몬테 베르디는 종교음악에서도 새로운 양식을 바탕으로 곡을 썼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양식과 옛 양식이 공존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몬테베르디의 <성모 마리아를 위한 저녁 기도>(Vespro della Beata Vergine)는 화려한 악기편성과 새로운 양식으로 유명하다.
몬테베르디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몇몇 등지에서 오페라가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유명한 작곡가로는 프란체스코 카발리가 있다. 그는 몬테베르디에 비해 아리아를 중시하였으며, 적기는 하지만 아리아에 풍부한 기악 반주를 넣기 시작했다.
바로크 초기의 소나타는 단순히 '연주되는 곡'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초기의 소나타는 짧은 악장이 여러 개가 있고, 성부의 수가 네개 이상이었다. 초기 이탈리아의 소나타 작곡가 중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작곡가는 살라모네 로시(Salamone Rossi)와 비아조 마리니(Biagio Marini)이다. 로시는 유럽 최초로 트리오 소나타를 작곡했고, 마리니는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혁신적인 주법에 맞춘 화려하고 기교적인 작품을 작곡했다.
이 시대 건반악기 작품의 작곡가로는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가 유명한데, 그 이후 100여년간 이탈리아에서는 그와 견줄만한 건반악기 작곡가나 연주가가 없었다. 프레스코발디의 건반악기 곡은 바흐는 물론 당대와 후대의 모든 건반악기 작곡가들, 특히 남부 독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연주자 개개인의 감정적인 반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상상력과 연주자의 자유로운 표현이 기교적이고 실험적인 연주를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