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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세계사] 028. 너 왕? 나도 왕! - 전국시대

by 나그네

춘추시대 중원의 패권을 초(楚)나라와 양분했던 진(晉)나라는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으뜸이라 불릴 만큼 강력한 국가였는데, 그 힘의 근원은 지리적 이점과 군사 시스템에 있었다. 진나라는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산서성 일대에 위치하여 천연의 요새를 갖추었고, 이는 다른 제후국들이 잦은 침략에 국력을 소모할 때 진나라가 국력을 보존하고 내실을 다질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더불어 북방 유목민과의 잦은 충돌은 진나라 사람들을 호전적이고 강인한 전사로 만들었고, 이는 곧 뛰어난 전투력으로 이어졌다.


진나라 강성함의 핵심은 군사력의 조직화에 있었는데, 진나라는 육군(六軍)이라는 강력한 상비군을 운영하며 그 지휘권과 행정권을 육경(六卿)이라 불리는 여섯 가문의 수장들에게 나누어 맡겼다. 육경은 군대 유지에 필요한 행정권과 광대한 영토까지 함께 위임 받았으므로, 군대 동원과 전쟁 수행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은 초기에는 육경 가문들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며 국가에 공헌하는 상승효과를 낳았고, 진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맹주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었던 이 시스템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후의 통제를 벗어난 독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육경의 권력이 혈연을 따라 대대로 세습되면서, 이들 가문은 위임받은 권한을 국가의 것이 아닌 개인 가문의 사유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철기 문명으로 농업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이 부는 중앙정부가 아닌 광대한 사유지를 가진 육경 가문들에게 집중되었고, 그들의 사병 규모와 무장 수준은 제후를 압도하게 되었다. 제후는 결국 궁궐 안에 갇힌 명목상의 존재로 전락했고, 국가의 실권은 육경들의 회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내부의 견제와 균형은 곧 잔혹한 권력 투쟁으로 변질되었다. 육경 가문들은 국가의 이익이 아닌 가문 간의 패권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가문이 숙청되었다. 결국 가장 강력했던 지씨(智氏)의 독선에 위협을 느낀 한(韓), 위(魏), 조(趙) 세 가문은 비밀 동맹을 맺고 지씨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기원전 403년, 이 세 가문은 진나라의 영토를 세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 독립 국가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삼가분진(三家分晉)이다.


삼가분진은 단순한 국토 분할이 아닌, 춘추시대 모든 질서와 명분의 종언을 의미했다. 신하가 제후를 몰아내고 나라를 세운 뒤, 주(周) 왕실로부터 정식 제후로 인정받으면서 혈연과 신분에 기반한 봉건 질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로써 힘과 실력만이 국가의 정통성을 결정하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선포되었다. 거대한 진나라의 몰락으로 세 개의 강력한 국가가 등장하자 중원의 경쟁은 극도로 격화되었고, 생존을 위한 철저한 실용주의와 부국강병 개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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