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4세의 아들이자 훗날 '태양왕'이라 불릴 루이 14세의 아버지. 루이 13세는 이 두 거장(巨匠) 사이에 끼어 종종 능력적으로 평가절하되곤 했다. 허나 어찌 절대왕정의 기틀을 다진 앙리 4세의 아들이며, 유럽을 호령한 루이 14세의 아버지가 무능할 수 있었겠는가. 그의 능력은 결코 허접하지 않았다.
그는 현명하게도 절대왕정의 주춧돌을 놓을 명재상, 리슐리외(Richelieu)를 등용하여 왕권 강화의 기틀을 공고히 했다. 또한, 어머니가 장악하고 있던 권력을 귀족들과의 담판, 때로는 과감한 쿠데타를 통해 직접 장악했을 정도로 과단성이 넘치는 군주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루이 13세는 선왕과 달리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훗날 예술을 권력 강화의 도구로 삼았던 아들 루이 14세와는 확연히 다른 지점이었다. 루이 13세에게 예술은 오로지 그 자체의 순수한 가치로서 추구되고 발전되어야 할 영역이었다.
그의 치세에 가장 눈부시게 발전한 예술은 바로 궁정 발레(Ballet de Cour)였다. 루이 13세는 발레를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직접 참여하는 열정적인 예술 활동으로 여겼다. 그는 직접 무대에 올라 발레를 추었을 정도로 이 예술을 사랑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음악적 재능까지 갖춘 왕이었다. 바로크 음악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조직을 창설했으니, 그것이 오늘날 표준화된 오케스트라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24대의 바이올린(Vingt-quatre violons)'이었다. 이 현악단은 프랑스 궁정 음악의 질을 한 차원 높이며 훗날 루이 14세 시대 황금기를 예비하는 견고한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예술적 진흥기 속에서 빛을 발한 음악가가 바로 자크 샹피옹 드 샹보니에르(Jacques Champion de Chambonnières)였다. 그는 하프시코드(클라브생) 음악의 대가로서, 여러 혁신적인 연주 기교(테크닉)를 개발했다.
그의 음악에는 류트(Lute) 음악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란하고도 우아한 장식음(Ornamentation)들이 가득했으며, 아름답고 우아한 선율, 펼침화음(Arpeggio) 및 다채로운 꾸밈음의 사용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곡마다 붙인 아름다운 부제(Sub-titles)는 청자에게 시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샹보니에르는 이러한 업적을 바탕으로 프랑스 클라브생 악파(French Harpsichord School)의 창시자로 추앙받는다. 그의 영향력은 당대 프랑스 후배 음악가들은 물론, 전 유럽의 건반 음악 발전에까지 미쳤으며, 루이 13세 시대의 우아하고 세련된 예술적 분위기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클라브생 악파(French Harpsichord School)는 자크 샹피옹 드 샹보니에르의 뒤를 이은 쿠프랭(Couperin) 가문에 의해 절정기를 맞게 되는데, 특히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 대쿠프랭)의 음악은 우아한 장식음과 섬세한 감정 묘사가 특징이다.
클라브생의 악파의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임윤찬의 피아노 곡이 있는데 유려한 선율과 화려한 장식음 기법을 느낄 수 있다
루이 13세의 시대는 이처럼 절대왕정의 강력한 정치적 기반과 순수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한 문화적 토양이 아름답게 융합되어, '태양왕'의 찬란한 시대를 준비하는 결정적인 교두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