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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사] 019. 중기 바로크 6 – 프랑스

by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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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중기 바로크는 루이 14세가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는 재능있는 음악가면 누구든지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러들였는데 가장 총애를 받은 음악가는 바로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였다. 륄리는 재능있는 음악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루이14세에게 아부를 하면서 타 음악가들을 음해, 모략하여 음악에서 독점적 권력을 쟁취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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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 오페라 몇 편이 상연되긴 했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에는 이미 루이 13세부터 궁정 발레같은 자국의 예술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이에 륄리는 동시대 프랑스 작가인 장 바티스트 몰리에르와 합작하여 코미디 발레(Comedie-ballet)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 코미디 발레는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노래와 춤을 합쳐 더욱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기 때문에 프랑스 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1671년 작가 피에르 페렝(Pierre Perrin)과 작곡가 로베르 캉베르(Robert Cambert)가 합작하여 상연한 오페라 <포몬(Pomone)>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페렝이 사기로 구속되자 륄리가 페렝으로부터 오페라 독점권을 사버린다. 그리고, 1672년 해산한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다시 열고 1673년부터 궁정 작가였던 필리프 퀴노(Philippe Quinault)와 합작한 <카드뮈와 에르미온(cadmus et hermione)>을 시작으로 일년에 한 번씩 오페라를 공연했다.


프랑스의 오페라는 이탈리아와 달리 극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발레와 합창이 포함되고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견결화 된다. 그로인해 훗날 프랑스 음악에서 륄리가 욕을 먹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프랑스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만든 것만은 사실이다.


종교음악의 측면에서는 륄리를 비롯한 왕실 예배당의 작곡가들은 궁정의 종교적 행사를 담당했다. 왕실 미사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화려한 곡들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작곡가들은 모테트를 많이 작곡했는데, 편성에 따라 프티 모테트(petit motet)와 그랑 모테트(grand motet)로 나뉘었는데, 프티 모테는 몇 개의 성악 파트와 통주저음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편성이지만 그랑 모테트는 다중 합창과 독창자,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끼워져 더욱 웅장한 규모의 모테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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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종교적인 음악에서는 미셸 리샤르 드 랄랑드(Michel-Richard de Lalande)와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oine Charpentier)가 두각을 나타냈다, 드 랄랑드는 70곡이 넘는 그랑 모테트를 남기고 있는데, 우아한 선율, 대담한 화성과 독창과 합창의 대조 등을 사용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특히 그는 카리시미에게 젊은 시절 로마에서 배웠기 때문에 프랑스에 처음으로 라틴어 오라토리오를 소개했다. 샤르팡티에의 오라토리오는 이탈리아식 오라토리오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륄리의 프랑스식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를 절묘하게 결합시켰으며, 극적인 대조와 가사 표현이 뛰어났다.


기악곡의 측면에서는 루이 쿠프랭(Louis Couperin)과 장 앙리 당글베르(Jean-Henri d'Anglebert), 니콜라 르베그(Nicoloas Lebegue)나 니콜라 드 그리니(Nicolas de grigny)같은 뛰어난 오르가니스트, 쳄발리스트들이 배출되었다. 이 시대에는 '비정량 전주곡'이 수록되었는데, 다시 말해 박자나 리듬은 연주자가 재량껏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오르간 음악의 특징은, 많은 성부와, 리드 스톱의 빈번한 사용, 친절한 악보 가이드 등이 있다. 중기 바로크 시대는 프랑스 바로크 오르간 음악의 최전성기였으며 바로크 시대 후에는 이에 필적한 만한 오르간 음악이 나오지 않게 된다.

또한 바이올린족에 밀려 빠르게 뒤쳐지던 비올족은 프랑스에서 대단히 인기가 있었는데, 그 배경에는 비올의 표현성을 최대로 끌어올린 생트 콜롱브와 그 제자 마랭 마레(Marin Marais)가 있었다. 그들의 비올 작품집은 화려하고 우아하기 비길 곳 없는 프랑스 양식의 걸작으로 전해진다. 비올 작품집이라 불리던 비올 연주자들의 작품들은 세련된 춤 전통에 바탕을 둔 프랑스적인 곡들이었으나, 푸가 곡들이나, 라 폴리아 변주곡 등 이탈리아 양식들도 조금씩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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