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의 왕 정(政)은 500여 년간 지속된 춘추전국시대의 기나긴 혼란과 유혈 사태를 종식시키고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을 수립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영토 확장을 넘어, 동아시아 문명의 근간을 완전히 재편한 문명사적 대사건이었던 것.
진나라는 일찍이 상앙의 변법을 통해 법가(法家) 사상을 국정 운영의 근간으로 삼아, 부국강병(富國強兵)을 극단까지 추구하며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와 규율 잡힌 군대를 완성했다. 왕 정(政)은 이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먼저 약한 고리를 끊고, 강한 적을 포위한다'는 치밀한 전략을 실행했다.
정복은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초기 공세 (한, 조 격파): 진나라는 국력이 미약했던 한(韓)나라를 가장 먼저 제압(BC 230년)하여 다른 나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후 북방의 군사 강국 조(趙)나라의 명장 이목을 제거하는 등 계략과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하여 격파(BC 228년), 북방의 가장 큰 위협을 제거한다.
중부 평정 (위 격파): 기원전 225년, 진나라는 황하의 물길을 돌려 위(魏)나라의 수도를 수공(水攻)으로 잠기게 하는 잔혹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을 써서 항복을 받아냈다.
최대 난관 극복 (초 격파): 남방의 광대한 영토와 인구,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초(楚)나라는 가장 큰 난관이었다.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고 수년간의 끈질긴 전투 끝에 초나라를 멸망(BC 223년)시키면서, 사실상 통일의 대세를 결정짓게 된다.
최후의 정복 (연, 제 멸망): 연(燕)나라의 태자 단이 진시황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연은 곧바로 멸망(BC 222년)했으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동쪽의 제(齊)나라는 진나라의 군세 앞에 별다른 저항 없이 무혈 항복(BC 221년)함으로써,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秦)나라가 완성되었다.
진시황의 통일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낡은 봉건 질서를 완전히 파괴하고, 이후 2천 년 중국의 통치 시스템을 정의한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① 황제권의 창조와 절대적 중앙 집권
진시황은 스스로를 삼황(三皇)의 덕과 오제(五帝)의 공을 겸비했다는 의미로 '황제(皇帝)'라 칭하며 전례 없는 절대적인 권위를 구축했다. 그는 이전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전 국토를 군(郡)과 현(縣)으로 나누어 중앙 정부가 직접 파견한 관료가 다스리는 군현제(郡縣制)를 확립했다. 이는 지방 분권의 씨앗을 완전히 제거하고, 황제 한 사람에게 모든 행정, 군사, 사법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의 시작이었다.
② 보편적 통치 시스템의 구축 (동질성 확보)
수많은 국가들이 각기 다른 문물로 분열되어 있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진시황은 강력한 통일 정책을 시행했다. 복잡했던 각국의 문자를 소전(小篆)으로 통일하여 통치 효율성과 문화적 유대를 강화했으며, 길이, 무게 등의 도량형과 화폐를 전국적으로 통일하여 지역 간의 경제적 장벽을 허물고 광대한 제국 내의 상업 활동을 폭발적으로 촉진시켰다.
하지만, 통일에 반대하고 봉건 질서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학자들을 탄압하고 서적을 불태우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여,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상적 다양성을 억압하기도 했다.
③ 후대 중국 왕조의 설계도
비록 진나라는 가혹한 법치와 대규모 노역(만리장성, 아방궁, 진시황릉)으로 인해 고작 15년 만에 멸망했지만, 진시황이 세운 절대적인 황제권, 관료제 기반의 중앙 집권, 그리고 통일된 행정 시스템은 후대 한(漢)나라를 포함한 모든 중국 왕조의 통치 철학이자 기본 설계도가 되었다. 진시황은 한 시대를 끝낸 정복자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2천 년 제국 중국의 기틀을 다진 시스템 설계자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