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06년, 진나라가 멸망한 뒤 중국 대륙은 다시 한번 거대한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 혼돈 속에서 두 명의 남자가 천하의 주인 자리를 놓고 5년간의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한쪽은 귀족 출신의 천재 장군 항우(項羽), 다른 한쪽은 촌구석 건달 출신 유방(劉邦). 이 둘의 대결은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전쟁이자, "능력만으로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는 냉혹한 진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기원전 209년, 진시황 사후 가혹한 통치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진승·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폭발했고, 그 중에서 초나라 출신 귀족 항우와 패현의 작은 관리 유방이 두각을 나타냈다.
기원전 207년, 항우는 거록대전에서 진나라 주력군 40만을 격파하며 "전쟁의 신"으로 떠오른다. 그는 배수진을 치고 솥을 깨뜨린 채(破釜沈舟) 목숨을 건 전투로 기적을 만들어냈다. 반면 유방은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입성했지만, 군사력에서는 항우에게 한참 밀렸다.
기원전 206년, 항우는 함양을 먼저 차지한 유방에게 분노했다. 그의 책사 범증은 "유방을 지금 죽이지 않으면 후환이 될 것"이라며 연회에서 암살을 시도하지만 유방은 절묘한 연기와 부하 번쾌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 홍문지회(鴻門之會)는 항우의 치명적 실수였다. 그는 힘으로는 누구도 당할 자가 없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에서는 유방에게 한참 뒤처졌다.
전쟁 초반, 항우는 천하를 18개 제후국으로 나누고 스스로 서초패왕(西楚霸王)이 된다. 유방은 변방인 한중(漢中)으로 쫓겨났지만, 이곳에서 천재 군사 한신을 얻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206년, 유방은 "한왕(漢王)"을 칭하며 반격을 시작한다.
군사 천재 한신은 명수지계(明修棧道 暗渡陳倉) - 겉으로는 길을 수리하는 척하며 뒤로 몰래 진격하는 - 전략으로 항우의 허를 찔렀다. 기원전 204년, 한신은 배수진(背水陣)을 펼쳐 20만 조나라군을 격파했다. 강을 등지고 싸우는 병사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고, 이는 전쟁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남게 된다.
항우는 전투에서는 계속 이겼지만, 하나둘씩 제후들이 유방 편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항우는 강했지만 잔혹했고, 유방은 약했지만 관대했다. 항우는 자기를 배신한 자는 가족까지 몰살시켰지만, 유방은 배신자조차 다시 받아들였다.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게 된다. 한신의 계략으로 항우는 포위망에 갇혔고, 밤이 되자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온다. 이것이 바로 사면초가(四面楚歌). 항우는 그 순간 깨달았다.
"내 고향 사람들까지 모두 한나라 편이 되었구나."
그날 밤, 항우는 사랑하는 여인 우희(虞姬)와 이별의 술을 마셨고, 우희는 항우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항우는 말을 타고 포위망을 뚫었다. 하지만 오강(烏江)에 이르러 그는 강을 건너는 것을 거부한다.
"하늘이 나를 버렸다. 강을 건너 무슨 면목으로 고향 사람들을 보겠는가?"
31세의 젊은 패왕은 스스로 목을 찔러 생을 마감하면서 두 영웅의 싸움은 끝이 났다.
왜 유방이 이겼는가?
1. 인재 등용의 차이
항우는 범증 같은 충신의 조언도 무시했으며, 자신의 판단만 믿었고, 의심이 많아 결국 범증마저 떠나보내게 된다.
유방은 스스로를 "장막 안에서 계책을 세우는 것은 장량(張良)만 못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먹이는 것은 소하(蕭何)만 못하고, 백만 대군을 지휘하는 것은 한신만 못하다"고 인정했지만 이 세 사람을 얻었기에 천하를 얻었다고 말했다.
2. 전략의 차이
항우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단기전의 천재였지만 장기적 전략이 없었다.
유방은 수없이 패배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한 번의 전투보다 백 번의 협상"을 택했고, "지금 지는 것"보다 "나중에 이기는 것"을 추구했다.
3. 인심의 차이
항우는 함양을 불태우고 투항한 진나라 군사 20만을 생매장했다. 항우는 강했지만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유방은 함양에 입성하고도 백성을 안심시키며 "법삼장(法三章)" - 세 가지 간단한 법만 지키라 - 을 선포했다. 약했지만 희망의 대상이었다.
초한전쟁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조직의 힘", "무력"과 "인심", **"영웅"과 "리더"**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항우는 모든 면에서 유방보다 뛰어났다. 더 강했고, 더 용감했고, 더 똑똑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였다.
반면 유방은 약했지만 많은 사람과 함께했다.
기원전 202년, 유방은 황제에 올라 한(漢)나라를 세웠고, 이 왕조는 400년을 이어가며 중국 문명의 황금기를 열었고, 오늘날까지 중국인을 "한족(漢族)"이라 부르는 이유가 되었다.
항우는 패배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천하를 얻을 뻔한 영웅", "비극적 천재"로서. 그리고 우리는 이 전쟁을 통해 배운다. 진정한 승리는 혼자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강해지는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