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장군, 한산도에서 크게 승리하다
1592년 조선에 일대 변란이 일어나니 바로 임진왜란이다. 부산부터 시작된 왜군의 진격은 가히 상상을 불허하여 조선군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그러나, 5-6월에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연거푸 패전을 하게 되자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왜군 최고의 해전 사령관 3인방을 급파한다.
그런데, 육지에서 조선군이 약체임을 확인한 3인방중 1인인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73척의 함대를 이끌고 한산도에 정박하였다. 이를 확인한 조선 수군은 총 55척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한산도는 암초가 많아 왜군을 포위할 수 없어 이에 5-6척의 함대를 미끼로 보내어 왜군을 유인하고, 여기에 조선군을 무시하고 있던 와키자카는 그대로 함선을 몰고 나온다. 와키자카의 적선이 도착하자 한산도 좌우의 섬에서 매복해 있던 전선들은 3개의 부대로 나뉘어 학익진을 형성, 일본 수군을 포위한 뒤 십자포화로 공격하였다.
선조 실록에 의하면 이때 적선 63척을 몰살시켰으며, 3인방 중 또 다른 1인이었던 구키 요시타카의 부대를 안골포에서 격파하면서 왜국의 수군을 거의 손실시키는 어마어마한 승리를 거둔다.
이 패배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을 하지 말고 해안선을 방어 하라는 뜻에서 '해전 금지령'을 선포하면서 사실상 남해의 제해권을 조선 수군이 되찾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학익진과 이순신 이라는 이름이 천하에 날리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