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옛날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꽤 오래전 이야기다. 동창 녀석이 흉곽 내과 전문의가 군의관으로 있었는데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나게 되어 반가워서 속칭 땡땡이를 치고 이런저런 검사를 한답시고 나를 데리고 의무실로 가서 체크를 했는데 나더러 부정맥이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게 뭔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그러려니 하며 지나갔다. 그런데 노인이 되어 가끔 듣는 소리가 심혈관 운운하는 말이 있고 그중에 부정맥이라는 과목도 있어서 신경을 쓰고 살펴보니 이게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라 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르고 지낼 때는 운동을 비교적 격하게 하는 습성이 있어서 거의 미친 사람처럼 달리기도 했고 등산을 할 때는 숨이 턱에 차서 깔딱거릴 정도까지 빠르게 올랐다.
기본적으로 부모님 덕분에 강한 체질을 물려받았기에 괜찮으려니 하는 교만함이 있었고 앞을 가리고 천천히 산행을 하는 사람을 답답해하며 추월하기에 급급했던 지극히 용렬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스톱워치를 켜 놓고 맥박을 재어보니 고르지 않았다. 비록 숫자는 정상 수치지만 뛰는 것이 일정하지 않고 게다가 뛰는 주기가 천천히 또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보며 이거 뭔가 싶었다. 음악이라면 엇박자도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 심장의 일이라 신경이 꽤 많이 쓰였다. 그냥 모르고 살다가 홀연히 사라지면 때가 되어서 갔겠거니 하였으리라.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새삼 명언으로 들려온다. 걱정이 줄어드는 만큼 행복한 시간의 분량이 늘어나는 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다. 돈이 부족한 사람은 비록 현재 쓰는 데 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미래로 인하여 다가오는 두려움에 휩쓸려 떨게 마련이다. 걱정으로 인하여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벗어나기 위해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삶 그 자체는 바로 시간이라는 자원으로 구성되었고 사용하든 안 하든 지나고 나면 다시 보충할 수 없는 시간의 속성이 있다. 생각나는 옛날 선배 어르신들이 부르던 노래가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미리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지고 걱정을 하다 보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건강 역시 저하되니 미래의 삶은 더 나약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라는 시제에 충실해야겠고 그 의미는 논다는 것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노세 노세를 바꾸면 일하세 일하세 사랑하세 사랑하세가 된다. 그 외에도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우리는 현재라는 함수에 가치를 대입하거나 적용할 수 있다.
후쿠시마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도시 중 하나였고 지진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판단되었기에 원전을 세웠다고 한다. 쓰나미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평온한 그 도시에는 부자들도 많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과 단란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던 가정도 있었겠지만 예고하지 않은 시점에 파도에 휩쓸려 폐허가 되었다.
노후를 준비하던 그 모든 노력이 한꺼번에 매몰된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돈이 부족하면 돈을 걱정하고 돈이 많아지면 건강과 수명에 대해 걱정을 하는 모습이 세상의 실체다. 마치 풍선에 물을 담아서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는 그러한 현상이 삶이라면 구태여 사서까지 걱정을 할 것은 아니다. 운명론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는 섭리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걱정을 하든 하지 않든 일어나는 일을 인간의 힘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이다.
동물 증에서 가장 능력이 약한 존재가 양이라고 들었다. 넘어지면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도 없으며 눈도 어둡다고 한다. 울타리를 벗어나면 바로 맹수의 밥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다른 동물처럼 스스로 청결하게 하려는 의지도 없으니 지저분한 존재다. 목자가 없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동물처럼 인간 역시 자연의 위력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어디 자연뿐인가 사람은 죄와 유혹이라는 거대한 늪이 늘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양에 비유하는 것이 아닌가. 죄와 유혹이라는 맹수가 들끓는 세상에서 목자가 없으면 멸망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시편 23:1)